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고전통해 세상읽기] 인주제봉(人誅弟封)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고대의 성왕 순, 악행 저지른 동생을

되레 한 지역 다스리는 제후로 임명

추앙받았던 순도 '내로남불' 못피해

상식·기준 존중받는 사회 만들어야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유학의 역사에서 요순(堯舜)?우탕(禹湯)?문무(文武)는 고대의 성왕으로 간주된다. 이들은 현실의 왕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이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훗날 논란의 대상이 되는 사건이 있었다. 탕과 무왕은 각각 은나라와 주나라의 건국 시조지만 이전의 하나라와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천자가 됐다. 이 사건으로 두 사람은 폭군 치하에 고통을 받는 백성을 구원했다는 해방자와 개인의 권력욕에 눈이 멀어 신하로서 군주를 정벌한 쿠데타의 주인공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이 사건의 논란이 뜨거워지자 맹자와 순자는 아주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천자는 억조창생(億兆蒼生)의 삶에 직간접으로 관여한다. 하나라의 마지막 걸왕과 은나라의 마지막 주왕는 천자의 자리를 이용해서 개인적 향락을 일삼았다. 그들은 억조창생의 삶을 돌보지 않고 자신의 쾌락을 추구한 것이다. 이 때문에 걸과 주는 더 이상 왕이 아니라 일부(一夫) 또는 독부(獨夫)일 뿐이다. 그들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 짝을 이루는 필부필부(匹夫匹婦)보다 못한 사람인 것이다. 따라서 탕과 무왕은 걸과 주왕을 정벌한 것이 아니라 그냥 한 사내가 잘못 차지하고 있는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것일 뿐이다.

성왕 중에 순은 왜 영화나 소설이 나오지 않을까 할 정도로 드라마틱한 삶은 살았다. 순이 어릴 때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는 상(象)이라는 아들을 기르는 어머니와 재혼했다. 재혼 이후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이복동생은 어떻게 하면 순을 죽일까를 계획하는 불량 가족의 모습을 보였다. 집을 수리하려고 순이 지붕에 올라가자 아버지는 사다리를 치우고 지붕에 불을 질렀을 정도다. 이 모든 악행에도 불구하고 순은 진심으로 가족을 대해 결국 개과천선하게 만든다.



순은 요로부터 왕위를 물려받고서 정국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던 네 명의 흉악한 인물(四凶)을 처벌하거나 추방했다. 반면 순은 자신을 죽이고자 했던 이복동생을 제후로 분봉했다. 이에 대해 제자 만장(萬章)은 맹자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질문을 했다. 순은 사흉이 사람답지 않다며 가혹하게 처벌했으면서 이복동생이 사람답지 않은데 왜 제후로 임명하느냐. 사람답지 않은 사람을 제후로 맞이하는 지역 사람들은 무슨 죄인가. 요약하면 “타인이라면 처벌하고 동생이라면 제후로 분봉하느냐.(재타인즉주지?在他人則誅之, 재제즉봉지?在弟則封之)”라고 물었다. 줄이면 “인주제봉(人誅弟封)”이 된다.

순은 사람이 사람다워야 한다면서 정작 이중 기준을 적용한 것이다. 타인이면 죄를 묻고 동생이면 죄를 묻지 않는 것은 둘째 치고 나아가 동생을 한 지역을 다스리는 제후로 임명했기 때문이다. 만장의 질문은 요즘 말로 하면 순이 “내로남불”했다는 지적이다. 맹자도 제자의 날카로운 질문을 받고서 나름대로 해명을 시도했다. 순은 동생이 개과천선하자 과거에 했던 잘못을 더 이상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원망을 하지 않고 친밀히 사랑했다는 것이다.

사실 맹자의 대답은 순의 “내로남불”, 즉 “인주제봉”의 혐의를 완전히 씻어냈다고 할 수 없다. 순은 형으로서 동생이 개과천선하자 과거의 비행을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순이 천자로서 과거의 여러 가지 잘못을 저지른 동생을 과연 제후로 임명해야 하는지 쉽게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대선 정국의 뜨거운 주제를 꼽으라고 하면 공정이 빠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는 만큼 최종 결과가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제공되느냐에 대해 회의가 늘어나고 있다. 입시와 채용이 규정에 나와 있는 조항대로 진행되지 않고 부모가 각종 인맥을 활용해 결과에 왜곡이 일어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식과 기준이 존중되기보다 반칙과 특권이 많은 분야에서 강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먼 옛날 성왕으로 추앙되던 순도 인주제봉의 혐의를 피하지 못했 듯 오늘날 누구도 상식과 기준을 지키지 않으면 내로남불의 혐의를 피할 수가 없다. 이처럼 합리적 의문이 단순한 인신공격의 소모전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특권과 반칙을 끝내고 공정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