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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담] 하필 지금 朴·이석기 출소, 尹 '보수분열' 뭘로 막나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文, 朴 사면 기습 결정...韓 복권, 이석기 가석방

'盧 악연, 尹 지지' MB 제외...기업인 사면도 '0'

대선 75일 남기고 왜 갑자기 결심했는지 불분명

"건강 고려"라지만...'한명숙 패키지' 설명 안돼

李 위한 '총대설'도...진보결집 앞 윤석열 '난처'

朴 메시지 시한폭탄...TK·강성보수 이탈시 악재

지난 2017년 3월 31일 구속영장이 발부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 위해 검찰차량을 타고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을 고작 75일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을 결정하는 ‘메가톤급’ 결정을 내렸다. 청와대는 “선거와 무관한 결정”이라고 강조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정치권 인사들은 많지 않은 분위기다. 박 전 대통령 사면의 후폭풍은 대선판을 흔드는 또 다른 요인이 될 것이란 게 정계 인사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을 배제하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해만 기습적으로 결단을 내리면서 문 대통령이 ‘정치 고단수’로서의 모습과 대선 정국에 대한 주도권을 과시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는 여기에 한명숙 전 국무총리 복권,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가석방 등을 잇따라 결정하며 진보 결집과 보수 분열의 토대를 마련했다. 문 대통령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이번 사면은 이른바 ‘아빠찬스’로 물러난 청와대 민정수석 논란을 일거에 관심 밖으로 밀어내고 야권을 코너로 몰아 넣는 정치적 승부수가 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입장에서는 일단 진보 진영을 규합하면서 대구·경북(TK)에서도 더 큰 발언권을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입장에서는 ‘악연’인 박 전 대통령과의 새 관계 설정,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 화합 등에 대한 숙제를 떠안게 됐다. <관련기사> ▶[국정농담] 文 퇴임 사저 경호 증원, 朴·MB 사면도 염두 뒀나

지난 2017년 8월23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경기 의정부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하는 모습. /연합뉴스


朴 사면, 한명숙 복권, 이석기 가석방

지난 24일 정부는 박 전 대통령과 한 전 총리를 포함한 일반 형사범 등 3,094명에 대해 오는 31일자로 특별사면·감형·복권 조치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정치인을 특별사면·복권 대상 명단에 넣은 것은 2019년 연말 특별사면 이후 2년 만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로써 오는 31일 0시에 입원 중인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서 석방된다. 2017년 3월31일 국정농단 혐의로 구속 수감된 지 4년 9개월 만이다. 박 전 대통령은 형기 중 1,736일을 채워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오래 수감 생활을 한 것으로 기록됐다. 남은 형기 17년 3개월은 면제된다.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사면 후에도 박 전 대통령은 연금, 비서관(3명), 운전기사(1명), 묘지관리 등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받을 수 없다. 재직 중 탄핵 결정을 받은 데다 금고 이상의 형까지 확정받았기 때문이다. 다만 기본 10년, 최장 15년의 경호·경비는 지원받을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많은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다”며 “신병 치료에 전념해 빠른 시일 내에 국민 여러분께 직접 감사 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 전 총리도 박 전 대통령과 같은 날 복권된다. 그는 2007년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9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2015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3,000만여 원을 확정받았다. 2017년 8월 만기 출소한 한 전 총리는 올 7월 자서전을 출간해 결백을 주장했다. 내란 선동 혐의로 징역 9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이석기 전 의원은 만기 출소를 1년5개월가량 앞두고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문 대통령은 같은 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우리 앞에 닥친 숱한 난제들을 생각하면 국민 통합과 겸허한 포용이 절실하다”며 “박 전 대통령의 경우 5년 가까이 복역한 탓에 건강 상태가 많이 나빠진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면에 반대하는 분들의 넓은 이해와 해량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24일 대전교도소에서 석방된 후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옥중 尹 지지’ MB는 빠져…盧 악연, 보수 적통성 등 차이

이 전 대통령의 사면 대상 제외는 또 다른 뒷말을 낳았다. 그가 박 전 대통령보다 11살이나 더 고령인 데다 형량도 적지 않기에 그랬다.

정치권에서는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임태희 총괄상황본부장 등 윤 후보 측에 이 전 대통령 측근들이 많이 포진돼 있는 상황에 주목했다. 친이계로 분류되는 한 관계자는 서울경제 취재진에게 “이 전 대통령이 옥중에서 비공개 서한을 통해 윤 후보 지지 입장을 전했다”고 귀띔했다. 이 전 대통령이 출소 후 윤 후보를 공개 지지할 우려가 있어서 제외된 것 같다는 분석이었다.

일각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한 악연이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이 전 대통령은 국민들의 자발적인 촛불집회로 탄핵돼 감옥에 들어간 박 전 대통령과 달리 순전히 현 정부 아래에서만 수사를 받고 유죄를 확정받았다. 부동산개혁, 검찰개혁, 언론개혁 등 문재인 정부 핵심 과제 상당수가 노무현 정부에 대한 재평가에서 시작된 점을 감안하면 그에 대한 단죄의 성격도 박 전 대통령과는 결이 달랐다는 게 정계·법조계의 중론이다.

두 사람의 퇴임 후 정치적 영향력 차이도 문 대통령 결심을 가른 요인으로 꼽혔다. 박 전 대통령은 1987년 이후 유일하게 5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한 지도자다. 보수 성향 유권자를 총결집시킬 정도로 진영적 상징성이 애초부터 강했던 인물이다. 김영삼(PK)·김대중(호남)·김종필(충청) 등 삼김 이후 마지막 지역(TK) 맹주 같은 지위도 있었다. 현재도 그의 탄핵과 수감을 안타까워하는 충성 지지자가 많은 편이다.

이에 반해 김영삼 전 대통령을 통해 정치에 입문한 이 전 대통령은 ‘정통 보수’로서의 이미지 자체가 처음부터 희미했다. 당선 당시에도 당내 비주류라는 인식이 강했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선거판에서 15% 이상의 강성 보수 표를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회창 전 총재에게 넘겨줬을 정도다. 이 전 대통령은 보수의 옷만 입었을 뿐 실상 수도권과 중도층 표를 쓸어담아 당선된 유일한 대통령이었다. 그가 내건 국정 철학은 ‘탈이념’ ‘실용주의’였고 이에 적극 응답한 이들도 보수주의자보다는 무당파 유권자였다. ‘도덕성은 포기할 테니 경제만 살리라’는 요구를 업고 집권한 지도자답게 그가 수감될 때도 함께 저항하는 국민들은 적었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도 두 대통령 수감의 무게가 달랐을 수 있다는 말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4일 기자들과 만나 “박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은 경우가 많이 다르다. 확연히 구분된다. 여론조사에서도 두 분의 차이가 컸다”면서도 그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 비서실 참모들은 같은 날 성명을 내고 “부당한 사법 처리가 정치 보복이었음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이재용도 제외…현 정부 대기업 총수 사면 '0' 유지

이 전 대통령뿐 아니라 관심을 모았던 주요 기업인 사면도 없었다. 실제로 24일 정부가 발표한 특별사면 대상자 3,094명 중 경제 관련 인사는 소상공인·중소기업인 38명에 불과했다. 구태여 선거를 앞두고 ‘재벌 봐주기’ 여론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정무적 판단이 개입된 게 아니냐는 추정이 나온 나왔다.



문재인 정부를 통틀어 사면 조치를 받은 재벌 총수는 지금껏 단 한 명도 없다. 지난 8월 이 부회장에 대해 가석방 결정을 내린 게 사실상 전부다. 재계에서는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 등 ‘5대 중대 부패범죄’의 사면은 배제한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이 정치인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기업인들에게만 엄격히 적용되는 게 아니냐는 볼멘 소리도 나왔다.

현 정부의 이 같은 기조는 이전 정부와도 크게 구분되는 것이다. 경제인 사면은 ‘경제 살리기’가 최대 화두가 된 외환위기를 계기로 논의되기 시작해 노무현 정부부터 활기를 띠고 이명박 정부에서 최고조를 이뤘다.

문 대통령은 이 같은 상황에서 27일 이 부회장을 포함한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 오찬을 나누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누구의 공감대가, 왜 대선 직전에 모였는지 불분명

문 대통령이 왜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그것도 갑자기, 박 전 대통령과 한 전 총리 등만 쏙 빼서 사면·복권 결정을 내렸는지는 불분명하다. 정치인으로 정점까지 오른 문 대통령이 선거 중립 논란을 예상치 못했을 가능성도 낮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20일 진행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 1차 전체회의에서는 박 전 대통령을 사면 대상자에 포함할지 여부에 대해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사면 결정 발표 직후 기자들에게 “참모들 간 토론은 없었다”며 “사면에 대한 생각을 당에 물어본 적은 없다. 특정 정치인과도 협의한 바 없다”고 설명했다. 권혁기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보부단장도 브리핑에서 “인대 파열 수술을 받은 송영길 대표는 청와대 고위관계자를 만난 적이 없고 통화도 안 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통령 사면이 순수하게 그의 건강 문제 때문에 이뤄졌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사면으로 박 전 대통령 건강 악화에 따른 정치적 파장을 역으로 차단했다는 시각이다. 법조계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최근 지병으로 다시 입원을 한 상황에서 형 집행정지도 신청하지 않자 21일 사면심사위가 사면 기조로 선회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박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도 매우 중요한 기준이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경우 한 전 총리와 이 전 의원 등 다른 정치인들에 대한 복권·가석방 조치가 왜 함께 묶였는지는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또 다른 편에서는 문 대통령이 중도 확장을 꾀하는 이 후보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총대를 멘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됐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 4월 오세훈·박형준 시장 청와대 초청 자리, 5월 취임 4주년 기자회견 등에서 전직 대통령 사면 조건으로 ‘국민 공감대’를 누차 강조해왔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연초 사면 발언을 했다가 지지층에게 뭇매를 맞은 경험을 의식한 듯한 행보였다. 박 전 대통령 사면 여론은 그런 와중에도 각종 조사에서 과반에 이른 적이 없었다. 문 대통령이 ‘국민’이 아니라 ‘대선 승리를 위해서라면 이제 괜찮다’는 ‘지지자’들의 공감대를 의식했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이번 사면은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부터 좋은 시점을 노리고 있었던 것 같다. 보수 내부의 분열을 촉진하고 여당에 유리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라는 전직 한국 정부 고관의 발언을 전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25일 ‘박근혜 특별사면, 한국을 뒤흔들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에 싣고 “내년 3월 한국 대선에 영향을 줄 거라는 게 많은 언론의 견해”라고 보도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연합뉴스


대선판 요동치며 민정수석 악재도 밀어내…야권 규합 숙제 떠안은 尹

사면 결정의 여파는 정권 임기 말 악재였던 김진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 사퇴 논란도 집어삼켰다. 김 전 수석은 아들 김모 씨가 최근 기업 입사 서류에 ‘아버지가 민정수석’ ‘아버지가 많은 도움을 주실 것’ ‘아버지께 잘 말해 이 기업의 꿈을 이뤄드리겠다’ 등의 내용을 적은 사실이 지난 20일 MBC 보도로 알려지자 옷을 벗었다. 문 대통령은 이튿날 김 전 수석 사의를 즉각 수용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부터 김조원·김종호·신현수 등 현 정부의 모든 민정수석이 구설수를 벗어나지 못했다. 김 수석은 사임 인사를 통해 “아들이 부적절한 처신을 한 것은 전적으로 저의 불찰”이라면서도 “문재인 정부의 정의와 공정을 향한 의지와 노력은 국민으로부터 온전하게 평가받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여야 역시 각자의 계산기를 열심히 두드리는 모양새다. 박 전 대통령, 한 전 총리, 이 전 의원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정국을 흔들 수 있는 탓이다. 이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면 카드가 아직도 남았다는 점도 변수다.

특히 국가정보원 댓글 조작 의혹 특별수사팀장과 국정농단 특별검사 수사팀장을 맡았던 윤 후보의 입장이 난처해졌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자칫 두 사람의 악연이 환기돼 TK 등 전통적 지지층이 이탈한다면 이는 윤 후보에게 큰 악재다. 박 전 대통령이 출소 이후 윤 후보에게 쓴소리를 할 경우 강경 보수층이 따로 결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배우자 의혹, 잇딴 실언 등으로 가뜩이나 지지율이 내려가는 상태에서 짐을 더 떠안은 셈이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소셜미디어에서 “두 전직 대통령을 또 갈라치기 사면을 해서 반대 진영 분열을 획책하는 것은 참으로 교활한 술책”이라고 비판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기자들과 만나 “김경수 전 경남지사만 사면했을 경우 정치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이 전 대통령을 남겨둔 게 아닌가”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여권은 겉으로는 표정 관리를 하면서도 내심 이번 사면이 중도층과 TK 공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 후보는 조승래 선대위 대변인을 통해 “국민 통합을 위한 문 대통령의 고뇌를 이해하고 어려운 결정을 존중한다”며 “국정농단의 피해자인 국민에게 박 전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TBS 라디오 ‘신장식의 신장개업’에서 ‘박근혜씨’라는 표현을 쓰며 “국민께 진심으로 사죄하는 태도를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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