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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7시간 퍼즐 풀어라" 실리콘밸리에서 잠은 왜 중요할까 [정혜진의 WHY NOT 실리콘밸리]

수면 테크 WHY NOT : 팬데믹이 끌고 빅테크가 띄울 것

2019년 수면 테크에만 투자하는

수퍼문캐피털 출범 후 8곳 투자

수면 테크 전체 펀딩 규모도 65% 늘어

이달 초 CES 2022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 노스홀에서 수면테크 기능을 체험하고 있는 참가자 /라스베이거스=정혜진 특파원




이달 초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박람회 CES 2022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LVCC) 노스홀 풍경 중 하나는 ‘눕눕’. 여기저기 누워서 수면 테크 기술을 체험하는 참가자들이 눕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했는데요. 이전에는 헬스케어의 한 분류로 여겨졌지만 별도 카테고리로 분류해도 될 정도로 수면 테크 전시의 존재감이 커진 겁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미국 기업 슬립넘버 등 몇 곳만이 참가했지만 국내 스타트업 중에서도 숨소리 만으로 수면 단계를 분석해주는 에이슬립, 코골이 완화 베개를 만드는 텐마인즈 등이 크게 주목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이동헌 에이슬립 대표도 4년 전부터 CES에 매년 참가하면서 수면 테크 전시장이 하루하루 커지는 것을 보면서 수면 테크 시장에 미래가 있다고 보고 창업에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이달 초 열린 CES 2022에서 숨소리만으로 수면 단계를 측정하는 에이슬립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를 설명하는 이동헌 에이슬립 대표 /라스베이거스=정혜진 특파원


“스마트홈으로 거실은 이미 똑똑해졌는데 침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에 대한 데이터는 모두 추적·분석되고 있지만 정작 잠자는 시간은 빠져있죠.” (이동헌 에이슬립 대표)

수면테크에만 투자하는 수퍼문캐피털

누군가는 수면 테크가 아직 태동기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 태동에 있어 의미 있는 주춧돌을 찾아본다면 이 순간을 빼놓고 얘기할 수가 없는데요. 2019년이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벤처투자사(VC) 한 곳이 출범을 하면서 3,600만 달러(약 429억)에 달하는 자금을 모았는데 투자 조건이 새로웠습니다. 오로지 수면 테크 기업에만 투자하겠다는 겁니다. 이름은 수퍼문캐피털. 이 회사의 미션은 이렇습니다.

“4명 중 3명에 달하는 미국인이 매일 밤 숙면에 드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3명 중 1명은 하루에 6시간도 자지 못하는 상황이다. 수면의 질을 높여 인류의 삶의 질 또한 높이겠다."

수퍼문 캐피털의 미션 /수퍼문 캐피털홈페이지 갈무리


당시만 해도 매트리스의 온도를 조절하면서 숙면을 도와주는 매트리스 제조사 슬립넘버, 온라인 기반으로 매트리스 판매하는 캐스퍼 등 ‘똑똑한 매트리스' 정도가 수면 테크로 여겨지던 때였습니다. 이후 수퍼문캐피털의 행보를 볼까요. 2020년 세계 최초로 음파를 이용해 비접촉식으로 수면 단계를 측정하는 앱 슬립스코어를 시작으로 수면 장애를 진단하는 서노 헬스, 엔소 데이터 등 총 8개의 수면 테크 스타트업에 투자를 해왔습니다. 수면 분석을 비롯해 수면 장애 진단까지 웰니스와 헬스 케어를 넘나들 정도로 수면 테크 저변을 넓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퍼문캐피털처럼 이 분야를 전문으로 하지 않더라도 전반적으로 관심이 늘어난 건 확실해 보입니다. 2020년 수면 테크 회사들이 유치한 펀딩 규모가 전년 대비 65% 늘어난 6억1,100만 달러(7,319억원)에 달했습니다. 이 기간 투자 건수는 오히려 줄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리즈A 이후의 대규모 펀딩이 늘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팬데믹이 부추긴 수면테크 태동

요새 특정 업계의 성장을 놓고 이야기할 때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무관하다고 보기가 어려운데요. 수면 테크 성장 역시 팬데믹 효과가 작용한 건 확실해 보입니다. 팬데믹 이후 우울감 등 정서적 문제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재택근무 등 일과 생활의 분리가 어려워지면서 꼭 수면 장애를 진단받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수면 문제를 이물감처럼 겪고 있는 듯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불면증을 뜻하는 ‘코로나썸니아’ ‘코비드썸니아’ 등 신조어가 유행하기도 했죠. 구글이 인수한 웨어러블 기기 핏빗의 조사에 따르면 팬데믹 이전에는 수면 후 ‘매우 잘 잤다’고 응답한 이들이 전체의 39.4%였습니다. 하지만 2020년 격리 기간을 겪으며 이 수치는 7.7%로 뚝 떨어졌다고 합니다. 맥킨지 컨설팅 그룹이 낸 보고서에 따르면 팬데믹 초기였던 2020년 상반기에 구글 검색을 통해 ‘불면증’을 검색한 미국인들이 최근 3개년 평균보다 58% 늘어났다고 합니다.

이달 초 CES 2022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 노스홀에서 수면테크 기능을 체험하고 있는 참가자 /라스베이거스=정혜진 특파원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이 수면 문제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이미 싹을 틔운 시장이 성장세가 빨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수면 시장은 어떤 식으로 발전할까요. 아까 이동헌 대표가 한 말을 전해드렸는데요. 스마트홈 산업에 정작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침실은 빠져있었다는 건데요. 당장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만 생각해봐도 잠이 드는 데 있어 필요한 명상, 잠이 든 후 숙면에 이르도록 조명·온도·습도·환기 등 내부 환경 조절, 이후 잠을 충분히 잔 뒤 깨워줄 수 있는 스마트 알람과 음성 비서, 수면 상태 모니터링 후 수면 장애를 진단·처방해주는 헬스케어까지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에이슬립만 해도 매트리스 렌탈, AI 스피커, 수면 기능 모니터링, 차량 조명 등 여러 분야에서 협업 제안을 받았습니다. 또 에이슬립의 서비스는 스마트 알람 기능을 위해 이미 아마존 에코 스피커에 탑재된 몇 안 되는 ‘써드파티 애플리케이션’이기도 합니다. 맥킨지는 수면 테크 디바이스 등 관련 시장이 2020년 125억 달러를 기록한 뒤 2027년까지 연평균 성장률(CAGR)이 17.8%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수면 테크 저변이 확장되면서 전체 시장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진짜 판은 빅테크가 키운다

/연합뉴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불면증이 시장을 태동시켰다면 성장에 전환점을 만들어주는 건 빅테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빅테크들이 저마다 웨어러블, 스마트워치 등으로 건강 분야에 주력하고 있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건강 관련 구독 서비스가 마르지 않는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이미 시장에서 양대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애플의 애플워치, 삼성의 갤럭시워치 외에도 구글도 도전장을 낼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웨어러블 1위 핏빗을 21억 달러(2조 5,158억 원)에 인수한 뒤 올해 중으로 픽셀 워치를 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들 스마트워치 시장의 경쟁이 격화되는 건 결국 스마트폰과 달리 우리 몸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우리의 일상의 모든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는 점도 큰데요. 스마트워치를 이용하는 이들도 잠 잘 때만은 스마트워치를 벗어두는 게 빅테크들의 고민거리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하루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데이터는 아직 비어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수면 테크 기술을 통해 비워진 마지막 퍼즐 조각을 찾을 수 있다는 건데요. 결국 승부는 누가 하루 24시간을 효과적으로 선점하느냐는 겁니다. 그러려면 수면 시간까지 잡아야 하겠죠. 머지 않아 수면 테크 기업이 빅테크의 러브콜을 받고 핏빗을 뛰어넘는 규모의 인수가 벌어지는 것도 시간 문제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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