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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칼럼] 우파 사상의 공격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인종이론 공교육 막자고 법 추진

유대인 학살 부정과 다를 바 없어

불리한 일마다 올가미 씌우다간

소중한 '자유의 가치' 무너질 것





미국인들은 미국을 ‘자유의 횃불’에 빗대어 생각하기를 즐긴다. 노예제라는 원죄에서 비롯된 어마어마한 불의(injustice)에도 불구하고 자유는 미국의 이상을 구현하는 오랜 핵심 요소 중 하나였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단지 자유로운 선거뿐 아니라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망라하는 총체적 개념이다.

그러나 지금 자유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전선에서 공격을 당하고 있다.

먼저 플로리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육에 대한 공격부터 살펴보자. 물론 공립 교육을 겨냥한 공격은 플로리다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플로리다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이곳이 미국 민주주의의 부식을 다루는 주요 실험실이 됐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비판적 인종 이론 교육을 비난함으로써 상당한 정치적 이익을 챙겼다. 대다수 유권자가 비판적 인종 이론이 무엇인지 전혀 모를뿐더러 실제로 이를 가르치는 공립학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의 전략은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비판적 인종 이론에 대한 공격은 더 큰 어젠다의 가림막에 불과하다. 이들의 진짜 목적은 학교에서 우익 진영을 불편하게 만드는 그 어떤 것도 가르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섣불리 하는 얘기가 아니다. 플로리다주 상원은 인종적 배경으로 인해 공립학교 혹은 기업에 속한 개인이 “불편한 감정이나 죄의식·분노, 혹은 다른 형태의 심리적 압박을 받도록 만드는 교육을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처리 중이다. 다시 말해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치느냐의 기준은 “그것이 사실인지 혹은 그에 대한 학문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지”가 아니라 “특정 선거구민을 불편하게 만드는지 아닌지”로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독소 조항에 무해한 해석을 내리고 싶다면 먼저 법안의 텍스트부터 주의 깊게 읽어봐야 한다. 이 법안은 학교가 지켜야 할 두 가지 금기 사항의 예로 “홀로코스트의 부인 혹은 극단적 의미 축소와 비판적 인종 이론 교육”을 제시한다. 비판적 인종 이론이 미국 사회의 저변에 깔린 ‘인종주의’를 시사하기 때문에 공립학교에서 다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아돌프 히틀러가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정말 소름 끼치는 발상은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 ‘불편한 감정’을 자아내는 그 어떤 것도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원칙을 적용하는 데 따른 효과가 인종 관계 교육에 국한되리라 믿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



우선 인종주의는 미국사에 등장하는 단 하나의 껄끄러운 토픽이 아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베트남전 개입 배경에 관한 설명에 불편함을 느끼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토픽들을 교과목에서 금지해야 할까.

과학 교육에도 어려움이 생긴다. 현재 대다수 고등학교는 진화론을 가르친다. 그러나 공화당의 유력 정치인들은 진화라는 개념에 대한 기반 지지층의 불편함을 의식해 폭넓은 과학적 공감대를 형성한 진화론을 부정하거나 피해가려 든다. 플로리다의 새로운 기준이 자리 잡게 되면 진화론 교육은 과연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게 전부가 아니다. 백신 접종 거부가 보수주의자들의 충성심을 보여주는 배지가 돼버린 상황에서 기본적인 전염병학, 심지어 세균이 질환을 일으킨다는 병리학 이론이 비판적 인종 이론과 동일한 취급을 받기까지 과연 얼마나 걸릴까.

비판적 인종 이론을 겨냥한 흑색 비방전은 거의 틀림없이 교육 전반을 우익 사상 경찰의 지배에 종속시키려는 시도의 출발점이 될 것이고 이는 인종주의라는 구체적인 주제를 넘어 이외 숱한 영역에 심각하고도 극단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 같은 룰을 집행하는가. 주 정부가 후원하는 자경단이다. 지난달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개인에게 불편함을 안겨주는 인종 교육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이른바 ‘Stop W.O.K.E. Act’ 법안을 제안했다. 이 법안은 학부모들에게 비판적 인종 이론을 가르치는 교육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이 같은 소송은 그 가능성만으로도 교육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낸다.

이와 함께 디샌티스 주지사는 선거 사기를 조사할 특별 경찰 수사팀을 창설하기 원한다. 비판적 인종 이론을 겨냥한 공격과 마찬가지로 선거 사기 경찰 수사팀 창설은 존재하지도 않은 선거 사기를 빌미 삼아 유권자들을 겁주려는 시도다.

지나치게 과장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 믿는다. 지난 5년 사이의 어떤 시점에서건 우익 극단주의에 관한 경고가 과장된 것으로 드러났다거나 그 같은 경고를 ‘불필요한 우려’로 일축했던 사람들이 옳았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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