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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나목·집 앞의 연인…연필로 긁어낸 일상의 단면

['미술계 아이돌' 문성식 개인전]

겸재·추사·박수근 등 작품서 영향

세밀화 탈피 '유화 드로잉' 신작

개인전 개막 동시에 100여점 완판

문성식 '겨울나무' /사진제공=국제갤러리




나무가 춤춘다. 봄 꽃, 여름 열매, 가을 잎 다 떨군 한겨울 나목(裸木)이 벌거벗은 몸으로 생명의 역동성을 노래한다. 한 획, 한 획, 새기듯 그은 선은 고정됐으나 꿈틀거린다. 나무 아래 사람들, 집앞에 선 연인은 그간 겪은 사건들과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숱한 사연을 함축하고 있다. 멈춰있는 장면이지만 켜켜이 시간성을 함축하고 있다.

‘미술계의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방탄소년단(BTS)의 RM이 자작곡 ‘자전거(Bicycle)’ 음반커버를 위해 직접 찾아가 의뢰한 화가 문성식(42). 그의 신작 개인전 ‘Life, 삶’이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한창이다. 일상의 장면, 주변의 동·식물을 포착한 100여 점의 작품은 개막과 동시에 완판 됐다.

문성식 '새드 엔딩' /사진제공=국제갤러리


문성식 '매화나무'


문성식 ‘모과나무’


지난 2005년 25세 문성식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최연소 작가로 참여할 당시의 작품은 너무나 정교해서 컴퓨터가 그린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머리카락 굵기의 가는 붓으로 수행하듯 그리던 고려 불화, 조선 왕실 화원의 공필화 같았다고나 할까. 떼어낸 정원이나 숲 그림을 통해 그가 보여준 것은 복잡미묘한 세상의 숨겨진 이면, 고립된 채 야성을 잃어가는 자연이 상징하는 현대문명의 메마름이었다.

고도의 세밀화는 화가 자신도 말라가게 했다. “정작 내 자신에게 가학적인 그림이라 오래하기 힘들었고, 더 그리다간 요절할 것만 같았다”는 작가는 변화의 필요를 확신했으나 “새로운 것이 안 보이던 시기”에서 벗어나고자 서울의 삶 터를 부산으로 옮겼다. 베니스비엔날레의 과도한 중압감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기도 했다. 5년 전 일이다. 작업의 방향성을 찾지 못하면 “때려치우겠다”는 극단의 마음이었다. 2013년 뉴욕에 머무를 당시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봤던 이집트의 벽화의 기억을 끄집어 냈다.

“오래된 물성의 아름다움, 낡아 헤진 표면의 미감에서 현대성을 발견했고 내 작업에서 꼭 활용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느낌을 구현하기 위해 홀로 1년간 기법을 연구했죠. 종이죽 같은 페이스트를 이용해 부조 느낌을 구사하고, 회벽 같으면서도 수제 종이 같은 질감을 찾았습니다.”



꼬박 2년 걸려 완성한 폭 364cm의 대작 '그냥, 삶' 앞에 선 문성식 작가. /사진제공=국제갤러리


평생 쥐고 썼던 연필도 단순한 도구가 아닌, 고유한 ‘회화언어’로 삼게 됐다. “일본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의 전시가 다양하게, 자주 열립니다. 고흐의 연필드로잉은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그렸는데도 화면이 너무나 활기차고, 선의 됨됨이에 지루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 순진하게 휘두른 손짓에서 영감을, 시시한 것도 다 그린 고흐에게서 용기를 얻었죠. 중요한 것은 슥슥 선을 휘두르는 방법과 그 됨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새로운 그림들을 지난 2019년 개인전 때 처음 선보였고 기법 연마의 과정을 거쳐 이번 신작들로 완성했다. 일명 ‘유화드로잉’이다. 벽화 느낌의 바탕을 만들고 검은색 물감을 올려 완전히 말린 후 그 위에 흰 바탕을 더 얹어 연필로 그렸다. 연필로 긁으면 표면 아래의 검은 선이 드러난다. 특유의 선(線)맛이 일품이다.

문성식 ‘땅의 모습’


문성식 '정원과 나'


어렵게 찾아낸 ‘선의 됨됨이’에 대해 작가는 “조선 회화의 전통과 한국 근대회화의 유산에 대한 존경심이 있다”면서 “겸재 정선의 미감과 추사 김정희의 호방함을 흡수하고, 박수근·이중섭의 선을 닮으면서도 그들과 다른 호흡을 보여주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시대를 관통하고자 한 바람이 실현됐다. 그가 그린 계곡과 절벽, 화단에 뿌리는 물줄기에서 겸재의 ‘박연폭포’가 떠오르지만 분명 ‘다르다’. 은지를 긁어 상감기법을 활용한 이중섭의 동적(動的)인 선, 거친 표면에 생명력을 숨긴 고목(枯木)으로 구현한 박수근의 정적(靜的)인 선이 감지되지만 지극히 현대적이고 ‘문성식답다’. 28일까지.

문성식 '그냥,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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