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간세포암 환자에서 면역 항암제 반응률 차이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체 특성을 발견했다. 난치암으로 꼽히는 간세포암 환자에서 면역항암제의 치료 효과를 높이고, 새로운 치료법을 발굴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서울병원은 소화기내과 백용한 교수와 혈액종양내과 임호영, 홍정용 교수 연구팀은 간암 환자에서 면역관문억제제의 반응성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체 특성을 규명했다고 10일 밝혔다.
보건복지부 연구중심병원 육성 연구개발(R&D) 사업의 지원을 받아 삼성서울병원 정밀의학혁신연구소와 소화기내과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의 성과다. 저명한 국제 학술지 ‘지놈메디슨’ 최근호에 게재되며 학술적 가치를 인정 받았다.
간암은 전 세계 암 사망률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치명률이 높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높은 발병률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간세포암은 간에서 발생하는 악성 종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형이다.
연구팀은 반응군과 비반응군을 구별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 식별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를 투여 받은 간세포암 환자 60명에 대한 통합 유전체 분석 연구를 진행했다. 간암 환자들이 치료 과정에서 면역관문억제제 투여에 효과 차이를 나타내는 근본 원인을 찾고, 환자들의 예후를 향상시킬 수 있는 바이오마커를 찾기 위해서다. 키트루다는 미국 머크(MSD)가 개발한 면역관문억제제다. 암환자의 면역세포 T세포 표면에 있는 ‘PD-1’ 단백질을 억제해 PD-L1 수용체와 결합을 막고 면역세포를 활성화함으로써 암을 치료하는 기전을 나타낸다. 2014년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흑색종 치료제로 허가를 받은 뒤 폐암·두경부암·위암·자궁경부암 등 30개가 넘는 암종에서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간세포암의 2차 치료제로도 승인을 받았다. 다만 치료제 투여에 반응을 보이는 환자가 제한적이란 한계를 안고 있다. 임상현장에서는 면역관문억제제 투여 전 치료 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신뢰도 높은 바이오마커(생체표지자)를 식별해야 한다는 점이 과제로 지목된다.
연구팀은 간세포암 환자 60명의 암 조직 일부를 떼어내 전체엑솜염기서열(WES), 리보핵산(RNA) 염기서열 및 단일 세포 유전체를 분석하고 환자의 종양미세환경 등 유전체 특성을 밝혔다. 이들 환자의 유전체를 초정밀 분석 결과를 토대로 환자들의 치료 과정을 관찰해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살폈다. 연구팀에 따르면 펨브롤리주맙을 투여 받은 60명의 간세포암 환자 중 치료에 반응을 보인 환자는 6명이었다. 반응률로 환산하면 10%에 불과한 셈이다. 임상병리학적 분석을 통해 △성별 △면역관문억제제의 표적인 PD-L1 유전자 보유 여부 △호중구 대 림프구 비율(NLR)이 면역관문억제제 투여 반응 차이를 나타내는 요인으로 확인됐다. 간세포암 환자 중 여성이면서 PD-L1 유전자를 보유하고, NLR 수치가 낮았을 때 면역관문억제제에 반응하는 경향을 나타낸 것이다.
반면 면역관문억제제 투여에 반응하지 않은 환자군에서는 CTNNB1 유전자의 체세포 돌연변이와 MET 유전자 증폭이 발견되는 차이를 보였다. 나아가 RNA 염기서열 분석 결과를 통해서는 T세포 수용체(TCR) 신호 활성화를 통한 T세포 독성 수준 증가가 면역치료 반응을 유도하는 요소라는 점을 포착했다.
연구팀이 치료 전 후 말초혈액단핵세포(PBMC) 10개의 단세포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 면역관문억제제 투여 후 부분적 반응 또는 안정적 반응을 보인 환자는 세포독성 CD8+ T 세포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반응하지 않은 환자의 경우 CD14+ 및 CD16+ 단핵구와 호중구 관련 경로의 활성화가 증가했다. 연구팀은 이 결과를 종합해 간세포암 환자에서 종양 침윤성 세포독성 T세포가 풍부하고 활성화된 순환 CD8+ T세포가 증가한 경우, 호중구 관련 표지자가 적을수록 면역항암 치료에 보다 최적화된 조건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번 연구의 책임자인 백용한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암환자 개개인의 종양 조직 자체의 특성과 함께 환자의 면역세포, T 세포의 성질이나 분포 역시 면역치료에 대한 반응을 도출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연구”라고 설명했다.
삼성서울병원 정밀의학혁신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박준오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가 향후 기존 면역관문억제제에 반응하지 않는 암환자를 대상으로 차세대 면역치료법을 발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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