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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리포트]'복지천국'도 연금 수술했는데…韓 이대로면 누적적자 1.7경

지금 시작해도 늦은 연금개혁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연금학회장)

출산율 급기야 0.8대로 떨어졌는데도

공적연금 강화 명목 급여율 확대 추진

공무원·군인연금發 국가부채도 눈덩이

2020년 한 해에만 100조원이나 늘어

스웨덴·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도

부담한 만큼만 받을 수 있게 제도 변경

공적연금 통합·자동안정장치 도입 등

대선주자간 제도 개편 원칙 합의 필요





지난 3일 20대 대통령 후보 TV 토론에서는 지금까지 보기 어려운 장면이 있었다. 무거운 코끼리를 옮기는 것만큼 힘들다는 연금 개혁에 대선 주자가 합의해서다. 난제로 꼽히는 연금 개혁에 대선 주자가 합의했다는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대단한 성취를 이뤄냈음에도 개혁 필요성을 강조해 온 입장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많아 보인다.

그동안 하락 추세였던 출산율이 급기야 지난 2020년에 0.84를 기록하며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아직 발표하지 않은 지난해 출산율은 0.7대로 예측되며, 올해에는 더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출산율과 기대수명 연장은 보험료 부담과 연금 지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우리는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연금 운영 여건이 좋지 않은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에 한국연금학회가 주관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핀란드 연금센터의 미코 카우토 의장이 발표한 자료는 출산율 변화가 연금 재정에 얼마나 부정적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출산율 1 가정에서 예상되는 보험료가 장기적으로 37% 수준이라서 그러하다. 출산율이 0.7∼0.8대인 현실에서 우리 국민연금 재정 상태가 얼마나 악화될지를 보여주는 산증거라 할 수 있다. 너무도 낙관적인 우리의 재정 전망에 대해 경종을 울리기 위해 필자의 요청으로 특별 작업해서 보여준 결과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지난 5년을 허송세월했다. 글로벌 추세와 한참 동떨어진 개편안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시켜 이미 곪아 터지기 직전인 연금제도를 더욱 병들게 하려고 했다. 오죽하면 연금개혁 시급성을 부르짖던 필자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 개편안은 반드시 멈추게 해야 한다고 했을까.

프로이센의 은급제도를 본떠 도입한 일본의 공무원연금은 1959년 제도 개편 이전까지 공무원이 보험료 한 푼 내지 않는 독일형 은급제도로 운영됐다. 1959년 이후에 우리 공무원연금과 동일한 국가와 공무원이 보험료를 절반씩 부담하는 제도로 개편됐다. 우리 공무원연금이 1960년에 도입됐으니 우리와 일본 공무원연금 역사는 거의 비슷한 셈이다. 이후 60년 이상 지난 현재 일본과 우리의 제도 운영에 엄청난 차이가 나고 있다. 이미 10여 년 전에 연금 일원화가 이뤄져 전 국민이 동일한 연금제도의 적용을 받고 있는 일본과 달리 우리는 그 차이를 더 넓히는 쪽으로 제도가 운영되고 있어서다.

국민연금은 어떠한가. 주변 상황이 악화되고 있음에도 공적연금 강화라는 이름으로 급여율을 더 올리겠다는 황당한 개편안을 개혁으로 둔갑시켰다. 관련 자료 비공개, 글로벌 트렌드와 정반대로 가는 연금 개편안을 선호하는 사람 위주로 연금 관련 위원회를 구성해서 벌어진 일들이다. 사실은 감추고, 연금 개편 최신 동향은 철저하게 함구하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를 현재진행형으로 대중에게 전달하다 보니 연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대다수 국민은 그 말들이 사실인 줄 안다.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팩트를 철저히 숨기고 외국 최신 동향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아서 발생한 현상들이다. 대표적인 예가 국민연금 급여율 인상을 통한 공적연금 강화 주장이다. 1970년생의 국민연금 예상 가입 기간을 예로 들어보자. 소득 수준별로 가입 기간을 추정해 보면 소득이 제일 낮은 1분위는 19.4년인 반면에 소득이 제일 높은 10분위는 33.9년으로 전망된다. 동일 출생 연도 가입자 사이에 최대 15년 가까이 차이가 나고 있다. 저소득자일수록 사각지대에 노출, 즉 연금에 가입하지 못한 비중이 높은 점을 고려하면 소득 1분위의 19년 가입 기간 추정은 그나마 과대 추정됐을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가입 기간이 짧다고 연금 급여율을 올리자고 한다. 지금도 후세대 부담 전가가 막대한 데, 후세대 부담을 더 늘리며 먹고살 만한 사람에게 더 혜택을 주자는 이러한 개편안이 활개치는 것도 결국 제대로 된 정보 부족에 기인함을 알 수 있다.

2015년 공무원연금 개편은 어떠한가. 국민에게는 고통스러운 개혁이라고 홍보했음에도 2020년 한 해에만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에서 기인하는 국가부채가 100조 원이나 늘어났다. 편 가르기 개편이라며 제도 개편을 주도한 사람들에게 폭탄이라도 터트리고 싶다고 일부 공무원들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공무원 특정 그룹에 유리하게 제도를 바꾼 것에 대한 불만 표시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재정 상태를 국민과 언론이 전혀 모르고 있다. 재정계산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서다.



국정 전반을 아울러야 하는 입장에서 만기친람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왜곡된 정보로 판단을 그르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부 개편안이 단적인 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전하게 일 처리하는 방식은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연금 관련 정보를 숨김없이 모두 공개한다는 원칙에 대선 주자가 합의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세대 간 형평성 확보, 제도 지속 가능성 제고, 공적연금 운영의 일원화, 글로벌 트렌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하겠다는 원칙에 합의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러한 합의를 도출했다고 해도 실행 단계에 가서는 다섯 가지 원칙에 대한 견해가 다를 수 있다는 데 있다. 제도 개편 과정에 어떠한 전문가를 투입하느냐에 따라서 개악이 개혁으로 둔갑할 수 있어서다. 정치 중립적인 소수의 핵심 전문가들이 우리 연금제도가 처한 현실과 장래 운명에 대해 가감 없이 중립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해야만 하는 이유다.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전문가, 정부 관리, 언론사 연금 관련 전문 기자들이 중립적인 입장에서 연금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접근해야 글로벌 연금개혁 트렌드에 부합할 수 있는 개편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복지국가 전형으로 불리는 노르딕 국가 대부분이 이미 기초연금을 폐지했거나 대폭 축소하고, 자기가 보험료를 내서 받는 연금제도는 부담한 만큼만 받는 제도로 변경됐다. 하지만 이 같은 동향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연금을 더 주자고 하는 것이 한국이 처한 현실이다. 향후 50여 년 뒤에도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 가입 기간이 27년에 불과하니 40년 가입을 기준으로 설정된 국민연금 급여율이 허수임을 들어 지급액을 더 올리자는 것이다.

스웨덴은 1999년에 과히 혁명적이라고 불리는 확정기여형 연금제도로 개혁을 단행했다. 보험료 부담 수준과 관계없이 사전에 급여 수준을 설정한 확정급여 방식(현행 우리나라 공적연금제도 운영 방식)에서 탈피해 낸 것만큼만 주는 연금제도로 바꿨다.

스웨덴 개혁을 뒤따라 석유 부국인 노르웨이도 자동안정장치를 도입했다. 후세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독일도, 일본도 자동안정장치를 도입했다. 자동안정장치란 연금제도 운영 환경이 부정적으로 바뀌면 그 변화가 초래하는 재정 불안정 요인을 자동으로 조절한다는 뜻이다. 여건이 악화되는 상황에서도 연금제도의 지속 가능성이 자동으로 확보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주요 국가 대부분이 이미 이 같은 자동안정장치를 도입했다. 연금자동안정장치 도입은 연금 운영에서의 탈정치화로 가는 지름길이다. 오랜 지인인 핀란드의 미카 비드룬드는 자동안정장치가 선택 사항이 아닌 룰이 돼가고 있다고 강조한다. 필지와 공동 집필한 보고서에 수록된 내용이다. 그는 대외협력담당관으로서 스칸디나비아 국가는 물론이고 유럽연합(EU) 회원국들 연금 전문가와 밀접한 교류를 통해 유럽 연금제도 운영 상황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정통한 전문가다.

주요 국가들이 이미 도입한 자동안정장치를 다음 대통령이 임기 내에 도입한다 해도 이미 20년 이상 뒤처진 것이 된다. 낙관적인 재정 전망에서도 오는 2088년까지 국민연금의 누적 적자는 1경 7000조 원으로 예상된다. 최근 출산율 하락을 고려하면 누적 적자 규모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연금 운영에서의 탈정치화를 실현하기 위해 연금 재정의 자동안정장치 도입을 대선 후보에게 합의하라고 하는 것이 지나친 요구 사항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연금 개혁에 진정성이 있다면 이 정도는 합의가 돼야 할 것이다. 동시에 누가 대통령이 돼도 연금 문제는 공동으로 대처하며 선거 때 표를 얻는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겠다는 합의문에 서명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합의라고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미국 연금제도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25년 동안 연금 분야만을 연구한 학자다. 세계은행과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UN ESCAP)의 한국 연금 전문가로 활동한 가운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는 20여 년간 한국 연금 개편 방향을 논의해 오고 있다. 하루 24시간 밥 먹을 때에도 연금 문제를 고민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연금 개혁론자이다. 한국연금학회 회장과 기초노령연금재정추계위원장, 국민연금심의위원회 부위원장,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재정추계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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