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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칼럼] 백신접종의 정치적 악용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美 인구대비 코로나 사망률 높은데

공화당 정치인 등 허위정보 흘려

방역수칙 위반을 '선택'으로 미화

무책임한 도박 반드시 책임 물어야





뉴욕시는 세계로 통하는 미국의 최대 관문이라는 특수한 지위 때문에 새로운 바이러스 변종의 급속 확산이라는 불이익을 당한 것이 사실이다. 다행인 것은 빠르게 치고 빠지는 오미크론 변이 유행에 맞서 뉴욕시가 비교적 선방했다는 점이다. 병원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린 것은 사실이지만 의료 체계가 무너지지는 않았다.

지난 2020년 1차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당시 많은 옵서버들은 높은 인구밀도와 대중교통 의존도로 뉴욕이 코로나19에 유난히 취약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국으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이 같은 진단은 오진으로 끝났다.

이번 경우 뉴욕시는 1차 유행 때보다 강화된 대응력을 보였다. 시민의 대다수가 예방접종을 했고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 두기, 식당 출입 시 접종 기록 제시 등의 룰을 충실히 따랐다는 것이 부분적 이유로 꼽힌다. 미국적 기준에 비춰볼 때 뉴요커들이 상당히 책임 있게 행동했다는 얘기다.

아쉽게도 미국의 전반적 기준은 대단히 불량하다. 미국은 코로나19에 부실하게 대응했다. 인구에 비례한 백분율로 보면 미국인들의 코로나19 사망률은 다른 경제 대국들에 비해 훨씬 높다. 오미크론이 유행하는 동안의 사망률 차이는 이전에 비해 월등히 크다.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미국인들이 책임 있게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과 다른 공인들이 조장한 무책임에 분노하는 사람은 필자 한 사람만이 아닐 터이다. 절대다수의 대중을 위험에 빠뜨리고 국민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소수에게 격한 분노를 느끼는 미국인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마스크 착용과 백신 접종에 적대적인 세력이 휘두르는 폭력이 심심치 않게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데 비해 책임 있게 행동하는 미국인들의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까지 나온 몇몇 조사 결과는 델타 유행 시기에 백신을 맞은 미국인들의 과반수가 미접종자들을 향해 미움과 분노의 감정을 품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오미크론의 거센 물결 아래에서 그들의 숫자가 크게 늘어났다거나 무책임한 동족에게 식상한 미국인들이 조용한 다수를 이루고 있다 해도 필자는 그리 놀라지 않을 것이다.

팬데믹 기간에 어떻게 행동할지는 개인의 선택 사항이라는 말은 하지 말라. 일정한 환경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코로나19 확산을 제한한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백신 역시 확산 속도를 줄이는 데 한 몫을 단단히 했다. 돌파감염 사례가 없지 않았지만 비접종자들이 위중증에 빠질 위험을 접종자들이 대폭 낮춰주면서 의료 체계 붕괴 위기를 막아냈다.



여기서 잠시 입증책임에 관해 생각해보자. 전문가들을 100% 신뢰하지 않는다 해도 비접종 상태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항공 여행을 하거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 주변의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는 기본 상식까지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레드 아메리카’에 속한 일부 주민들은 ‘블루 도시’들이 기쁨이 없는 폭정 지역으로 변했다고 상상한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지금 지갑 안에 백신카드를, 주머니에 마스크를 넣고 다니는 뉴요커들은 약간의 불편만 감수하면 원하는 일을 거의 무엇이건 할 수 있다.

개인적 선택의 자유를 외치며 기본적인 코로나19 예방 조치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타인의 안위를 무시하는 이기적인 인간이다. 최악의 경우 그들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는 공격적 행동을 취한다. 이런 행동의 상당 부분은 정치적이다. 우파 언론의 당파성 짙은 허위 정보에 배를 불린 공화당 지지자들은 민주당 지지자들에 비해 비접종 가능성이 4배나 높은 반면 장 보러 갈 때 마스크를 착용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팬데믹 상황은 기본적인 공중보건 예방 조치를 문화전쟁의 일부로 몰아감으로써 반사이익을 챙기는 우익 정치인들과 오피니언 리더들의 추한 모습을 투영한다.

이처럼 냉소적인 도박이 행여 역효과를 내지는 않을까. 상당수 미국인들은 팬데믹을 연장하는 불량한 행동에 분노한 상태다. 책임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조용한 분노는 간단히 봐 넘길 수 없는 정치적 힘이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정치적 스펙트럼과 상관없이 유권자 계층에 대한 비난을 삼간다. 오미크론의 기세가 꺾이고 있는 만큼 방역 제한 조치를 완화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무책임한 행동을 부추긴 정치인들에게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새로 선출된 버지니아 주지사 글렌 영킨은 기존의 제한 조치를 대폭 완화한 자신의 코로나19 정책으로 이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런 사례가 계속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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