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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다자주의 붕괴로 통상질서 재편…가치동맹 내세워 경제영토 넓혀야”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서방 가치동맹과 중·러 권위주의 충돌 구도 30년 지속될 듯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과 근거리 위주로 다변화 전략 절실해

차기 정부, 한반도 ‘재균형 정책’과 태평양 중시정책 마련하고

복합위기 넘으려면 규제 혁파와 친기업 정책에 승부 걸어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경제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 미러 분쟁까지 겹쳐 신냉전 체제가 형성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이 뿌리째 흔들리는 등 국제 무역 질서도 재편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정글’에서 각국이 생존 경쟁에 나서고 있는데 우리 정치권은 퍼주기식 복지 확대 경쟁만 벌이고 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7일 연구실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다자주의 붕괴로 국제 통상 질서가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며 “미국 등과의 가치 동맹을 내세워 우리의 경제 영토를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원장은 또 “차기 정부는 지나친 중국 편향에서 벗어나 한반도 재균형 정책을 펴야 한다”면서 “복합 위기를 넘어 난제들을 해결하려면 규제 혁파와 친기업 정책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세계 정세 전반에 큰 파장을 미치고 있다.

△최근 힘의 우위에 바탕을 둔 보호주의 파고가 세계 경제를 덮치면서 규범에 근거한 다자주의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앞으로 상당 기간 서방의 네트워크와 중국·러시아의 권위주의적 네트워크가 충돌할 것이다. 뜻을 같이하는 나라끼리 연계를 강화하고 다른 나라를 배제하는 전략이 펼쳐질 것이다. 최근 세계 각국에서 민족주의 성향의 정치 지도자들이 대거 등장해 보호주의와 반(反)이민주의를 내세우는 것도 이런 경향을 부추긴다.

-국제사회의 러시아 경제 제재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미온적 대응이 논란을 빚었는데.

△정부도 국제 무대에서 더는 국익만 내세운 외교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미국이 제공하는 공공재 등을 활용해 우리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해온 호시절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정부는 러시아 제재 여부를 놓고도 러시아의 반응이나 경제 관계의 피해만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서방 네트워크에 참여하지 않았을 때 받을 피해를 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미중 기술 패권 전쟁도 더욱 격화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승자 독식의 시대다. 미중 무역 전쟁의 바탕에는 더 이상 기술 경쟁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강대국의 강박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까지 겹쳐 자유무역이 퇴조하고 보호무역주의가 힘을 얻고 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흔들리는 상황이다. 미중 무역 전쟁은 어느 한 쪽이 무릎을 꿇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최소한 30년 이상 지속될 것이다.

-현 정부는 중국 눈치 보기로 일관했다는 비판을 받는데.

△더 이상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입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서방국과의 교류도 같은 진영에 속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중국을 상대로 인권이나 부패 문제를 꺼내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데 이는 굉장히 단기적인 시각이다. 중국의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사드 같은 사태가 언제든지 닥칠 수 있다. 우리도 미국과 보조를 맞춰 중국이라는 나라가 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정치·무역·금융 시스템을 갖추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이 7일 연구실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다자주의 붕괴로 국제 통상 질서가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며 “튼튼한 가치 동맹을 내세워 우리의 경제 영토를 넓혀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권욱 기자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쳐 공급망 문제가 발등의 불이다.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집중된 공급망은 근본적으로 위험할 수밖에 없다. 시장도 마찬가지다. 대안 시장을 적극 모색하고 다양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효율성을 중시했다면 지금은 안정성과 더 가까운 곳 위주로 기지를 배치해야 한다. 중국 등 특정 국가에 집중된 구조를 다변화하기 위한 전략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의 목소리가 잘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제 정세는 급박하게 돌아가는데 정책적 대응이 늦다는 비판이 높다.

△최근 주목할 것은 각국마다 안보와 통상·환경 채널이 빠르게 통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이슈 연계 전략’이 부각되면서 관세나 비관세 같은 통상 수단이 동원되고 있다. 우리도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 유연하고 신속한 정책과 전략을 구사할 수 있도록 조직 개편에 나서야 한다. 부처 간 소통을 늘려 전략적으로 연계하고 협업을 통해 신속한 의사 결정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주무 부처 간에 상시 협의 체제를 구축하되 조정 기관을 외국처럼 대통령 직속으로 두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산업 공동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오는데.

△가장 큰 걱정은 대기업들이 투자를 꺼린다는 사실이다. 국내의 척박한 경영 환경이 많은 대기업들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 국민 경제적 시각에서 보면 신규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일자리도 늘지 않아 빠르게 산업 공동화를 겪게 된다. 반면 정부의 리쇼어링 관련 법안은 전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인센티브는 적은 데 반해 수많은 규제가 도사리고 있어 기업들의 유턴을 가로막는다. 탄소 중립 정책만 해도 속도가 너무 빠르다. 어떤 정책이라도 기업 경쟁력과 생존 가능성, 미래 시장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내놓아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차기 정부에 바람직한 통상 외교 정책을 주문한다면.

△워싱턴에서는 한국 정부가 중국 자기장의 영향에 들어 있다고 판단한다. 이런 점에서 한반도의 근본적인 재균형 정책과 태평양 중시 정책이 필요하다. 우리가 한미일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전략적 카드를 동원해 새로운 글로벌 통상 질서를 주도하는 것도 추진해볼 만하다.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나 ‘쿼드+’에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민주주의 정상회의’에도 가입해 민주주의·인권 등 가치를 공유하는 주요 동맹국들과 연합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우리 정부도 이제는 수동적·소극적인 대외 전략에서 벗어나야 한다. 글로벌 핵심 중견 국가로서 자신감을 갖고 이슈를 선도한다면 많은 나라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다.

-앞으로 경제를 이끌어나갈 산업을 어떻게 키워야 하나.

△지금은 선발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독식하는 형태다. 네이버나 카카오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미국 기업과 비교하면 구멍가게 수준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수한 인재를 활용해 기존 제조업에 디지털 기술을 효과적으로 접목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교육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금처럼 한정된 자원을 대학에 나눠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산업 현장의 수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교육부를 해체하고 혁신부나 전략인재양성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왜 나오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기업들은 과도한 규제가 투자를 가로막는다고 지적하는데.

△기업들이 국내로 들어오지 못하는 데는 정부 규제 탓이 가장 크다. 두 번째가 인건비다. 정부가 친기업 시스템으로 바뀌지 않으면 기업들이 더 많은 인센티브를 지원받는 해외 시장으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다. 강성 노조나 친노동 정책은 기업가들의 일할 의욕을 상실하게 한다. 한국에서는 기업가들이 돈을 버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하고 지탄받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이런 분야의 개혁 작업이 차기 정부에서 진행돼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세계 경제의 판도 변화를 전망한다면.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많은 경제 주체들이 디지털 변화를 경험했고 다양한 방식의 근무나 협업 구조에 눈을 뜨게 됐다. 코로나19 발생 이전 상태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 기업이 생각하는 공급망은 효율성에서 안정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디지털 거래도 더욱 활발해지고 다양한 방식의 구매 패턴이 정착될 것이다. 기업들이 거대한 기술 변화를 어떻게 현장에 접목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코로나19를 틈타 국가주의가 팽배해졌다는 우려가 높은데.

△많은 나라에서 큰 정부를 지향하고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하지만 효율성 점검이나 적재적소 사용을 위한 견제 기능은 약화됐다. 마치 돈을 많이 써야 좋은 정부라는 인식이 팽배해진 것은 굉장히 우려할 만하다. 예산을 늘려야 한다면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지금처럼 ‘큰 정부론’이 사회적 거부감 없이 수용되는 현실은 심각하게 우려되는 부분이다.

-우리는 대선까지 겹쳐 국가주의가 더욱 증폭되는 것 아닌가.

△차기 정부가 들어서도 예산 팽창은 불가피한 추세다. 국회나 경제 전문가, 시민 단체 등은 견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누가 대선에서 당선되더라도 선심 정책에 따른 재정 적자 등으로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복지 정책은 한번 내놓으면 고정비용처럼 굳어지는 경향이 있다. 여당과 정부의 무분별한 퍼주기 정책에 야당까지도 흔들리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차기 정부는 숱한 난제를 해결해야 할 중책을 안고 있는데.

△차기 정부는 구조적인 문제에 글로벌 문제까지 겹쳐 다중·복합 현안을 해결해야 한다. 구조적으로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와 투자 감소가 지속적으로 경제 체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이 와중에 미중 패권 다툼이 벌어지면서 보호무역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수많은 나라들이 산업 정책을 다시 들고 나와 자국 기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이 가장 선호하는 다자주의 체제가 흔들리는 것은 기업들에 불확실성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민간 부문의 성장동력을 되살리기 위해 고용 유연성을 확보하고 과감한 규제 혁파에 나서야 할 것이다.

He is…

1963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남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유타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 조지워싱턴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미 조지타운대 연구교수와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한국경제학회 이사, 한국국제통상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세계은행 정책연구부 자문역을 거쳐 산업통상자원부·외교통상부 등에서 정책 자문을 해왔다. 현재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겸 세계무역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역사의 시작’ ‘불균형 사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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