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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노조 조직률 70%…이사회 발목 잡고 의사결정 편향 불보듯

[공약 거품을 걷어내라]

< 5 > 노동난제 합의로 풀어라-노사갈등 뇌관 '노동이사제'

협력적 노사관계 기반 둔 제도

노사갈등 심한 韓선 안착 어려워

하반기 공기관 시행…민간 확대 우려

경영효율 저하·비밀 노출 가능성

제어장치 없이 도입땐 파장 클 듯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해 10월 서울 서대문역 사거리에서 도로를 점거한 채 집회를 열고 있다. 성형주 기자






“한국수력원자력에 노동이사가 있었다면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지난달 11일 대선 후보자 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경영계와 노동계가 5월 출범할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경영계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자 시절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윤 당선인이 공약 등을 통해 노동계에 치우치거나 기업 활력을 떨어뜨리는 노동정책을 고치겠다던 입장과는 180도 다른 제도이기 때문이다.

노동이사제는 노동 현안 중에서도 각계각층의 이견이 큰 분야다. 경영계는 노동이사제가 우리 노사 현실에 비춰 적용하기 이르고 기업의 경우 경영 효율성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며 반대한다. 반면 노동계는 공공 부문을 개혁하고 기업의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노동자의 이사회 참여는 필수적이라고 맞선다. 노동 학계에서는 협력적 노사 관계에 기반을 둔 노동이사제가 한국처럼 대립적 노사 관계가 심화한 곳에서 안착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17·19·20대 국회가 결론 못 냈던 ‘뜨거운 감자’=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개정으로 올해 하반기부터 한국전력·국민연금공단 등 131개 공공기관에서 처음으로 노동이사제가 적용된다. 3년 이상 재직한 근로자에게 노동이사 자격을 부여하는 게 골자다. 노동이사제는 그동안 각계각층의 찬반이 심해 결론을 못내다가 2020년 노사정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어렵게 입법을 위한 합의를 이뤘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16년 서울시 산하 투자 출연 기관에 노동자 대표를 이사회에 처음 참여하도록 했다.

개정안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는 개정안은 제17대 국회를 시작으로 제19대, 제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다. 20대 국회에서만 법안소위가 세 번 열렸지만 결론 내지 못했다. 공공기관도 이제 하반기 도입이 법제화된 만큼 민간으로 노동이사제 확대 가능성을 예단하기 이르다. 하지만 경영계는 여러 정책이 공공기관에서 먼저 시행하고 민간에 적용되는 선례가 많았던 만큼 확대 적용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공공 부문 70%가 노조…중립적 이사회 가능한가=공공기관 노동이사제에 대한 대표적인 우려는 이사회의 중립성 훼손과 이로 인한 기능 저하다. 개정안 검토보고서에서도 “이사회에 참여할 이사의 전문성을 검증하는 절차가 부족해 부적격자가 이사로 임명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공기관은 민간 기관처럼 영리가 아니라 공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사회의 기능 저하는 더 큰 문제다. 제도 목적인 공공 개혁의 실패에서 그치지 않고 국정 전반의 문제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간에서는 노동이사제가 신속한 의사 결정을 방해해 경영 효율 저하, 경영상 비밀 노출 등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공공 부문과 대기업 노동조합이 기득권화된 만큼 노동이사제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가장 큰 약점으로 꼽힌다. 노동이사가 순수한 견제 역할을 넘어 노조 이해관계에 따른 결정을 이끌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0년 전체 노조 가운데 부문별 조직률은 공공 부문이 69.3%에 달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공 부문 노조는 이미 노동기본권 등을 전부 보장 받은 상황”이라며 “아무런 제어 장치 없이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는 것은 민간 파급 효과까지 고려할 때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독일부터 윤·안 설전까지…유럽과 다른 한국=지난달 11일 대선 후보 토론에서 윤 당선인과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노동이사제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윤 당선인이 “노동이사제에서 변호사가 주로 노동이사를 맡는다”고 주장하자 안 대표는 “서울시 산하 20개 공기업의 16명 노동이사 중 15명이 노조 출신”이라고 반박했다.

사실 학계에서는 ‘흔한 장면’이다. 독일처럼 한국도 노동이사제를 도입할 수 있는지, 이사회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이끌지 등은 학자마다 견해가 갈린다. 노사도 마찬가지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한국은 독일과 교섭 형태, 자본주의 시스템, 이사회 구조가 달라 노동이사제 도입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노총은 “지배구조 개선과 사회적 가치를 높여 공공기관을 개혁할 수 있다”며 노동이사제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독일·스웨덴 등 노동 선진 국가와 우리 노동환경 토양이 너무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유럽 국가는 노사가 각각 원하는 사회안전망과 노동 유연성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협력적 노사 관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한국은 노동 유연성에 대해 노동권 약화라며 사회적 논의를 미루다가 대립적 노사 관계를 만들었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노동이사제는 근로자 대표제, 노사협의회처럼 단계적인 도입의 결과물인데 현장에서는 근로자대표제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며 “높은 수준의 협력적인 노사 관계를 요구하는 노동이사제가 우리처럼 강성 노동조합의 대립적 노사 갈등 모델에서 가능한지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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