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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포템킨 경제

소주성·이념에 매몰된 입법 폭주…

文정부 5년, 韓 '성장의 힘' 소멸돼

5500조 달하는 부채 공화국만 남겨

尹 '개혁' 놓칠땐 부활불씨마저 위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축배를 든 지 보름 만에 전해진 일본 주간지 ‘다이아몬드’의 한국 경제 분석은 쓰디쓰다. 2003년 한국에 역전당한 대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25년 다시 우리를 앞지를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규모의 경제로 한국 경제를 떠받쳐온 재벌 체제가 중국의 벽에 부딪히는 반면 대만은 TSMC의 폭풍 성장에서 보듯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오히려 혜택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대만 상장 기업의 시가총액이 23.7% 급증한 데 비해 한국은 3.6% 증가에 그쳤으니 이런 논리를 흘려듣기 쉽지 않다.

문재인 정부 5년, 우리는 국가의 경제적 힘을 키울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지니고 있었다. 한국 경제는 1997년 국가 부도를 맞았지만 뼈저린 구조 조정으로 새살이 돋아나게 했고 성장의 에너지를 응축했다. 젊은이들의 벤처 붐은 워크아웃으로 120여 개 기업이 절멸한 자리를 메웠고, 자본시장에는 연일 ‘바이 코리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서방 국가들이 재정 위기로 허우적거릴 때 우리가 보란 듯 일찍 체력을 회복한 것은 환란의 아픔을 견디며 쌓아 올린 힘 덕분이었다. 미국에 넘어갈 뻔했던 하이닉스는 정상을 되찾았고 조선·철강 등 빅딜 대상 기업들은 세계 시장을 다시 호령할 만큼 성장했다. 외환 보유고는 4000억 달러를 넘었고 나라 곳간은 어느 나라와 견줘도 부족하지 않게 됐다. 코로나19로 글로벌 기업과 자원 부국들이 휘청거릴 때 축적된 힘을 100%, 아니 절반이라도 제대로 이용했다면 우리는 새로운 국부를 만들고 국가의 도약을 일궈낼 수 있었다. ‘G7’을 넘어 ‘G5’를 넘보는 것도 허황된 일이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는 모든 기회를 허무하게 날렸다. ‘그들만의 리그’로 진행된 소득 주도 성장과 포퓰리즘 재정, 이념에 매몰된 입법 폭주는 나라의 밑동을 흔들었다. 해외 알짜 광산과 우량 기업들을 헐값에 사들일 수 있었던 돈은 ‘세금 알바’를 만드는 데 흩어졌고 나랏빚은 400조 원 넘게 늘었다. 개인·기업·정부에 걸친 5500조 원 ‘부채 공화국’의 짐을 떠안고 출발해야 할 윤석열 정부가 안쓰럽다. 더욱 뼈아픈 것은 미래 먹거리를 만들 새로운 주력 기업을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세금과 규제 족쇄에 기업들이 사업을 포기하고 해외로 이탈하는데도 나라가 멀쩡해 보이는 것이 신기하다. 연금·노동 등의 개혁을 외치며 나라의 미래를 얘기하는 것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이 순간에도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말하고 ‘소주성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를 떠나 보내며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말한 ‘포템킨 경제’를 떠올린다. 1787년 러시아 황제 예카테리나 2세가 시찰을 나오자 그레고리 포템킨 총독은 환심을 사려 낙후된 크림반도의 흉물을 감추고 화려한 가짜 마을을 조성했다. 겉은 번듯하지만 속은 초라한 ‘포템킨 빌리지’의 모습을 우리와 관계없는 딴 나라 이야기로 치부할 수 있을까. 세계 5대 강국의 지위가 신기루처럼 사라진 아르헨티나의 전철을 우리는 밟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윤석열 당선인은 유세 내내 문재인 정부를 향해 “철 지난 운동권 이념과 엉터리 좌파 정책”이라고 공격했다. 국민은 공정과 상식, 새로운 성장이 어우러지는 ‘진짜 마을’을 만들어 달라며 그가 던진 ‘정권 교체’의 화두에 화답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대통령 못 해 먹겠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조차 허락되지 않을 만큼 난제로 가득하다. 말로만 개혁을 외치고 성장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린 순간 국민은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며 가차없이 ‘바꿔’를 외칠 것이다. 윤석열 정부야 정권을 다시 내주면 그만이지만 대한민국은 다르다. 대만에 역전당하는 것은 그나마 나은 모습이다. 제로 성장의 끔찍한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때 국가는 부활의 불씨마저 잃고 포템킨 이상의 추한 몰골로 변해 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 5년은 당선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엄중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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