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대기업 동일인(총수)에 대한 형사 처벌 규정이 과도한 만큼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서울대 경쟁법센터(센터장 이봉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제1차 기업집단법제 개편을 위한 법?정책 세미나를 열었다.
법무법인 지평 김지홍 변호사는 “공정거래법상 동일인 제도는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동일인을 중심으로 대규모기업집단의 범위를 지정하고, 일정한 의무를 부과하는 분명한 국가사무에 해당한다”며 “그러나 국가사무를 사인(私人)인 동일인에게 신고 의무를 둘 뿐 아니라 신고가 부실하면 형사처벌까지 하는 것은 과도한 제재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현행법은 동일인이 본인을 중심으로 6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비영리법인과 그 임원 등 동일인관련자의 보유 지분 등을 낱낱이 파악해 신고토록 하고 있다”면서 “강제조사권이 없는 동일인이 수백, 수천건에 달하는 동일인관련자 정보를 빠짐없이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를 누락했다고 형사처벌하는 것 역시 과잉규제에 해당한다”고 꼬집었다.
이봉의 교수도 “현행법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동일인에게 관련 자료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여기서 ‘요청’은 협조를 구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면서 “최대한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사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또 이 교수는 “설사 동일인에게 자료제출의무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료제출과 같은 절차상 위무위반은 질서위반행위인 만큼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통상적”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이어 “동일인관련자와 계열회사의 범위 등 관련 조항이 모호한 상황을 감안하면 형사처벌 여부는 전적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데, 이는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동일인 및 동일인관련자 제도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동일인이 동일인관련자 범위인 6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비영리법인과 그 임원 등의 모든 경제활동을 모두 파악하기도 불가능할 뿐 아니라 이들이 자료제출을 거부하거나 고의로 누락할 경우 강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계열회사 여부를 판단하는 동일인의 지배력에 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광범위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정거래법은 ‘동일인이 직접 또는 동일인관련자를 통하여’ 지배할 것을 요건으로 하나 공정위는 동일인이 해당 회사를 지배하지 못하더라도 관련자의 지배만 있어도 계열회사로 본다. 김 변호사는 “오히려 ’동일인관련자가 지배하는 회사’라면 동일인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 징표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동일인 제도 개선 방향과 관련해 김 변호사는 자료제출의 의무를 동일인 1인에게 강제하지 않고, 관련 자료를 직접 보유하고 있는 회사 또는 해당 회사의 특수관계인에게 부과해야 오히려 자료제출의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고 봤다. 형사처벌 역시 동일인이 직접 자료를 누락하는 경우처럼 고의성이 명백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 교수는 동일인이 제출한 자료에 일부 누락이나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업집단 지정에서 빠질 정도로 상당한 영향이 없는 경우 형사처벌은 자제돼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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