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병원 간의 임금 청구 소송에서 그 지연손해율을 계산할 때 상법이 아니라 민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의사나 의료기관의 영업활동을 상행위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미지급된 임금에 대한 지연손해금 이율도 연 6%가 아닌 5%를 적용해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의사 A씨 등이 한 의료법인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지연손해금에 대해 피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자판했다고 14일 밝혔다. 파기자판이란 상고심 재판부가 원심 판결을 파기하면서 사건을 돌려보내지 않고 직접 판결하는 절차를 말한다.
A씨 등은 울산의 한 종합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하다 퇴사하면서 시간 외 근로수당과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을 받지 못했다며 병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의료법인과 1일 8시간, 주 40시간 일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했는데, 퇴사 전까지 총 96시간의 초과근무에 대한 시간외 근로수당을 받지 못했고 퇴직금 역시 시간외 근로수당을 제외한 임금으로 계산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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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의 쟁점은 의사가 의료기관에 대해 갖는 임금 등 채권이 상사채권인지 일반 민사채권인지 여부였다. 상사채권일 경우 상법에서 정한 연 6%의 지연이율을, 민사채권인 경우 민법상 연 5%의 지연이율을 적용 받을 수 있다. 하급심은 A씨 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1심 재판부는 퇴직일부터 14일까지는 민법을 적용해 연 5%의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반면, 2심 재판부는 상법을 적용해 연 6%의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의사나 의료법인에 대한 임금 채권에 상사채권을 적용할 수 없다고 봤다. 의사의 활동은 상인의 영업활동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의료법의 여러 규정과 제반 사정을 참작하면 의사나 의료기관을 상법이 규정하는 상인이라고 볼 수는 없고, 의사가 의료기관에 대해 갖는 임금 등 채권은 상사채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며 “의사의 의료행위와 관련해 형성된 법률관계에 대해 상인과 동일하게 상법을 적용해야 할 특별한 사회경제적 필요나 요청이 있다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은 의사와 의료법인을 상인이라고 볼 수는 없고, 의사가 의료기관에 대해 갖는 임금 등 채권의 본질은 상사채권이 아닌 일반 민사채권이라는 점을 최초로 판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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