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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오리엔트·중동이 인류 역사의 뿌리"…서양 중심 세계관에 반기

■인류 본사

이희수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동서양 아우른 '중양사' 시각 접근

오스만·무굴 등 15개 제국 분석해

1만2000년간 '역사 중심축' 증명

페니키아 문자서 유래한 알파벳

중동서 발원한 기독교·유대교 등

다양한 사례 들어 문명의 태동 짚어





터키 남동쪽 하란 고원에 위치한 고대 유적 ‘괴베클리 테페’는 인류 역사 발전 이론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1963년 첫 조사 때만해도 중세 시대 무덤 유적으로 추정됐지만 2000년대 들어 최소한 1만2000년 전의 신전 도시라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이전에는 고대도시 문명은 농경·정착시대의 산물이라는 게 통설이었다.

하지만 세계 4대 문명의 출현보다 무려 6000년이나 앞선 이 신전 도시는 농업혁명이 시작되기 전인 수렵·채집 시대에 세워졌다. 이 유적 발굴은 ‘야만→목축→농업→농·공업→농·공·상업’이라는 인류 경제발전 모델이나 1만년 전쯤 ‘신석기혁명’으로 초기 고대 문명이 형성됐다는 기존의 역사학 틀을 뿌리 채 부정하는 사건이었던 셈이다. 또한 오리엔트·중동 지역이 인류 문명의 모태임을 또 한번 증명한 계기이기도 했다.

1만2000년 전 신전 도시 ‘괴베클리 테페’ 발굴 현장./사진제공=휴머니스트


신간 ‘인류 본사’는 오리엔트·중동 지역이 약 1만2000년간 인류 진보를 주도해온 역사의 중심축이라는 관점에서 세계사를 바라본다. 이를 위해 초(超)고대 아나톨리아(지금의 터키 영토) 문명부터 바빌로니아, 사산조 페르시아 등 고대 문명과 7세기 이후 이슬람 왕국을 거쳐 근대 오스만제국과 무굴 제국까지 15개 제국의 흥망성쇠를 정리했다.

저자는 중동 역사와 이슬람 문화의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하나로 꼽히는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교수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터키 이스탄불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문화인류학자다. 중동과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 이슬람권 전역에서 40년간 현장 연구를 해왔다.

히타이트 왕국의 석조 신전에서 지하세계의 신들을 묘사한 12신 부조./사진제공=휴머니스트


이 교수는 서양사나 동양사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서양과 동양을 아우르는 중양사(中洋史)라는 시각으로 역사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우리는 그리스·로마에서 출발해 중세→대항해시대→르네상스→종교개혁을 거쳐 산업혁명과 근대 문명으로 귀결된다는 식의 서양 중심의 세계사를 배워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항해 일부 대학에서 동양사학과를 개설했지만 중국사 중심으로 가르쳤을 뿐 나머지 세상은 지역사, 변방사, 비주류 역사로 치부됐다. 특히 19세기 이후 이슬람권이 국제적인 힘을 잃으면서 중동의 역사적 성과도 주변부로 밀렸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아나톨리아 반도 차탈회위크에서 발견된 ‘앉아 있는 여인’. 키벨레, 아르테미스, 비너스 등 오리엔트나 그리스·로마 시대 지모신의 근원이 된 모신상이다./사진제공=휴머니스트




하지만 책은 오리엔트·중동 지역이 인류의 뿌리 역사, 즉 ‘본사(本史)’라고 주장한다. 이들 지역이 인류 문명 자체를 탄생시켰고 이후 서양과 동양을 이어준 ‘중간 문명’의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가령 터키 중부에 위치한 ‘차탈회위크’는 기원전 7500년전부터 2000년 가까이 유지된 최초의 신석기 도시로 수메르로 대표되는 고대 오리엔트 문명의 어머니로 불린다.

또 인류 문명의 발상지 네 곳 가운데 세 곳이 아나톨리아가 모태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아나톨리아 문명은 티그리스강-유프라테스강 하류의 메스포타미아 문명에 이어 이집트 문명 탄생에 영향을 미쳤다. 인더스 문명조차 아랍 세계와 문화적 교류가 가능했던 파키스탄 지역에서 처음 시작했다.

책은 그리스 문명의 뿌리인 크레타섬 미노아 문명도 이집트 문명과 오리엔트 문명의 영향을 받아 종합해양 문명으로 발전했다고 말한다. 역사학의 아버지 헤르도토스, ‘오디세이아’ 작가인 호메로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스, 철학자 탈레스 등 그리스 문명의 대표적인 인물들이 아나톨리아에서 태어났거나 활동한 것이 단적이 사례다. “그리스·로마 문명은 오리엔트에서 뻗어나간 줄기 문명이다.” 반면 중국 문명은 파미르고원이라는 지리적 장벽 탓에 서구에 큰 영향을 영향을 미치지 못한 채 독자적으로 문명권을 발전했다.

파르티아 제국의 원형 요새도시 하트라에 자리한 대신전./사진제공=휴머니스트


또 책은 중동은 신화·문자·정치·법체계·기술 등 인류 발전에 필수인 문물들을 창조한 문명의 요람이었다고 말한다. 가령 영어 알파벳 등 오늘날 인류가 사용하는 문자의 대부분은 페니키아 문자에서 유래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도 중동에서 발원했다. 바빌로니아 왕국의 함무라비법은 로마법과 이슬람율법의 기초가 되었고 히타이트는 철기 시대를 처음으로 열었다. 파르티아와 사산조 페르시아는 6400㎞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따라 동양과 서양의 정치·경제·문화를 이어준 문명의 핵심 기지였다. 또 유럽이 중세 시대 1000년에 걸친 암흑기에 들어갔을 때 세계 최고의 수준의 학문과 과학, 예술 발전을 이끌고 인류 문명에 기여한 것도 이슬람이었다.

이슬람 나스르 왕조가 이베리아반도 그라나다에 세운 알람브라 전경./사진제공=휴머니스트


이슬람 문명은 중동을 넘어 중앙아시아, 아프리카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티무르제국은 바그다드의 과학기술 혁명을 받아들여 14세기 중앙아시아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이베리아반도의 나스르 왕조 역시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에서 보듯 높은 수준의 학문과 건축기술을 남겼다. 사하라 이남 서아프리아의 말리와 송가이 제국의 전성기도 이슬람이 남긴 유산이다. 특히 저자는 반세기만에 망한 몽골 제국을 제외할 경우 페르시아, 로마, 오스만 등 ‘세계 3대 제국’ 가운데 2곳이 중동·오리엔트 지역에서 나왔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사례에서 보듯 현재 서양의 문명과 문물은 결코 서양에서 기원하지 않았고, 인류 역사 5000년 중 적어도 4800년간 ‘중심 문명’의 역할을 한 곳은 중동 지역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14세기 중앙아시아 르네상스를 이끈 티무르 조각상./사진제공=휴머니스트


“아나톨리아는 지구 안의 또 다른 지구다. 그 속에서 다양한 삶, 신앙, 공동체, 제도, 과학기술이 실험되고 배태되었다. 빛을 머금은 문명은 지중해를 통해 그리스·로마로, 남쪽의 메소포티미아로, 카스피해 남부를 지나 실크로드라는 문명의 젖줄을 따라 중앙아시아와 동방으로 전달되었다.” 3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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