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업계에 따르면 ‘초격차 반도체 패키지 선도 전략 민관 태스크포스(TF)’가 이달 초 산업통상자원부에 낸 보고서는 △기술별 연구개발(R&D) 추진 △산학연 협력 생태계 조성 △반도체 패키지 특화 전문 인력 육성 등 크게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전략의 구심점은 단연 첨단 반도체 패키지 종합 센터다. 이 센터는 국내 후(後)공정 업체, 반도체 설계 업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소재·부품·장비 업체 간 유기적인 협력을 모색하면서 전문가들이 각종 표준·성능 검증을 지원하는 형태의 기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산학연 협력 연구를 토대로 석·박사급 고급 인력 양성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보고서에는 우리나라 후공정 업체들이 중장기 로드맵을 세울 수 있도록 산업 기반을 전방위로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2030년까지 한국 반도체 후공정 시장점유율을 21%까지 끌어올리고 전문 인력을 2000명 이상 육성한다는 밑그림을 설정했다. 후공정은 반도체 회로 제조가 끝난 웨이퍼를 칩 모양으로 자르고 가공하는 작업이다. 반도체와 전자 기기 간 신호를 원활하게 하는 기판을 덧대거나 각종 배선을 연결한다. 칩 동작 여부를 테스트하는 과정도 포함한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 단장은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 조명받지 못했던 후공정 분야를 챙기지 않으면 현재의 위치도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며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처럼 패키징 연구개발 센터 건립 등 반도체 후공정 지원 전략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관련 산업 생태계가 유독 열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 후공정 시장 상위 10개 업체 가운데 한국 회사는 전무하다. 하나마이크론·SFA반도체·LB세미콘·네패스 등 4개 업체만 10위권 바깥에 이름을 올리고 있을 뿐이다. 상위 25개 후공정 업체 총매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6% 안팎에 불과하다. 대만(52%)·중국(21%)·미국(15%)에 크게 밀리는 형국이다.
매출 규모에서 밀리다 보니 미래 기술 투자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 위주인 한국은 전문 인력을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 수준으로 어렵다. 자금 면에서나 인재 면에서도 3D(3차원) 패키징 등 차세대 기술에 투자할 여력이 크지 않다. 후공정 생산 라인에서 활용하는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비율도 50% 수준에 그친다.
후공정 업계의 고위 관계자는 “낮은 매출 규모, 인력 부족, 특허 전담 조직 취약 등으로 중장기 전략을 세우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부실한 정부 지원은 성장성 저하를 부채질했다. 전(前)공정에 비해 비교적 단순한 작업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문재인 정부의 2019년 시스템 반도체 육성 전략, 2021년 K반도체 전략 등에서 후공정 분야는 늘 외면받았다. 정부의 반도체 지원은 설계, 칩 위탁 생산 등에만 집중됐다.
이는 세계적 반도체 업체들이 최근 이 분야에 앞다퉈 관심을 쏟는 상황과 대조적인 흐름이다. 글로벌 업체 대다수는 회로 미세화가 한계에 다다르자 후공정을 활용한 칩 성능 고도화를 노리고 있다. 서로 다른 칩을 하나의 반도체처럼 이어 붙이거나 쌓아 올리는 이른바 이종(異種)결합, 첨단 3D 패키징 기술이 부각하고 있다. 정보기술(IT) 업계 호황으로 패키징 수요 자체가 폭증하는 점도 업체들에는 기회 요인이다. 대만 ASE, 미국 앰코테크놀로지 등 기존의 거대 후공정 회사 외에 이제 미국 인텔, 대만 TSMC 같은 굴지의 전공정 기업까지 관련 산업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인텔은 최근 첨단 이종 결합 기술을 적용한 자체 칩을 출시했다. TSMC는 자체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을 적용해 미국 AMD가 설계한 칩을 생산한다.
경쟁국 정부도 지원책 마련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상무부 산하 국립첨단패키징제조연구소에서 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을 추진 중이다. 대만은 대학, 5개 기업과 협력해 거점별로 패키징 연구 센터를 운영한다. 싱가포르는 미국 장비 업체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의 고급 패키징 장비 R&D 센터를 유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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