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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 교육청 나홀로 ‘돈잔치’ 막겠다지만…교부금, 부실 대학 연명줄 될라

◆수술대 오른 지방교육재정교부금

10년새 초중고생 125만명 줄었는데 교부금 2배 급증

내국세 21% 자동배분, 50년전 인구팽창기 그대로

기재부 “대학까지 확대 지원” 요율 재설계는 주저

고등교육 지원은 선택과 집중, 대학구조조정 연계를





#제주교육청은 2016년 초등학교 강당 신축 사업에 72억여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하지만 사전 준비 부족으로 2017년과 2018년 두 해 연속 자금을 집행하지 못한 채 예산의 불용과 이월, 이듬해 재배정을 되풀이했다. 2019년 3월에야 강당 공사를 시작했으나 학교 운동장을 넓혀야 한다는 이유로 착공 2개월 만에 터 파기 공사를 중단한 채 사업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학교 부지를 추가 매입한 후 뒤늦게 도시관리계획 변경 절차에 착수하는 바람에 공사는 2020년 말까지 또다시 1년여 멈췄다. 예산을 4년씩이나 제때 집행하지 못해 학생들도 오랜 공사로 좁아진 운동장을 사용하는 불편을 겪었다.

#교육부는 2018년 학교 내진 보강을 위해 일선 교육청에 재해 복구용 특별교부금 1495억 원을 배정했다. 당시 5개 교육청은 같은 목적으로 교부된 보통교부금(4000억여 원)이 적지 않은 데다 공사 기간도 부족해 추가 교부가 이뤄질 경우 연내 집행이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으나 교육부는 이를 밀어붙였다. 그 결과 추가 교부액의 70%인 1052억 원이 금고에 고스란히 묶였다.

두 사례는 2020년 5월 감사원이 17개 시도 교육청의 지방교육재정(초·중등 교육재정)교부금 운용에 대해 감사한 결과의 일부다. 첫 번째 사례는 교육청의 주먹구구식 재정 운용을, 두 번째 사례는 교육부의 밀어내기식 예산 편성의 실태를 각각 보여준다. 중앙정부가 내려보낸 교부금을 교육청이 이런 식으로 불용 또는 이월하는 바람에 금고에 잠긴 자금은 2016~2018년 3년 동안 평균 6조 3000억여 원에 이르렀다. 교육청은 교부금을 제때 사용하지 못하면서 같은 기간 2조 5472억 원의 지방교육채권을 발행했다. 비효율적 재정 운용으로 혈세가 줄줄 샌 것이나 다름없다.

2017년 8월 중등 교사 임용시험 준비생들이 서울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임용절벽’에 항의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감사원 감사의 파장은 컸다. 교육청마다 지방교육채권의 조기 상환이 줄을 이었다. 교부금이 부족할 경우에 대비한 ‘안정기금’이 설치된 데 이어 올해에는 ‘교육시설환경개선기금’도 처음으로 적립됐다. 하지만 이 정도의 개선으로는 교육 재정의 난맥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무엇보다 교육 수요와 동떨어진 예산 배정의 경직성이 도마에 오른다.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데도 내국세(관세를 제외한 국세) 총액의 20.79%와 교육세 일부가 자동적으로 배정되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교육부 출신 김경회 명지대 교육대학원 석좌교수는 “현행 제도는 인구가 급팽창하던 1972년 2부제 수업 시절에 도입된 것으로 인구절벽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며 “다들 쉬쉬하지만 차기 정부부터 교원 수급의 ‘폭탄 돌리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학령인구 감소로 교원 충원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이미 2014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를 넘어섰다.

일선 교육청은 올해 그야말로 ‘돈벼락’을 맞았다. 당초 편성된 교부금은 65조 595억 원. 추가경정예산 편성 때 11조 원이 자동 증액된 데다 추가 세수에 대한 정산분 5조 원을 합쳐 81조 원으로 늘어났다. 이는 전년 대비 34.7% 증가한 역대 최대치로 불과 10년 전인 2013년 41조 원에 비해 두 배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학령인구(만 6~17세)가 657만 명에서 올해 532만 명으로 125만 명 줄어드는 바람에 빠듯한 나라 살림에 과도한 재원이 투입된다는 논란을 낳았다. 지방교육감 선거를 앞둔 지난해의 경우 일선 교육청마다 ‘교육재난지원금’ 명목으로 학생 1인당 최대 30만 원씩의 현금을 살포한 것이나 태블릿PC를 나눠준 것은 남아도는 교부금의 민낯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월 인천시 남구에 있는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육청이 무상 대여한 노트북 컴퓨터를 교실로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교부금 재정 운용의 난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여론이 들썩였다. 재정 당국도 칼을 들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새 정부의 경제정책방향에서 50년 묵은 교부금 제도를 재정 개혁의 수술대에 올렸다. 중앙정부와 자치 정부는 빚더미에 짓눌렸는데 교육청의 나 홀로 ‘돈잔치’를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정부가 교부금 수술 카드를 꺼낸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기재부는 반년 전인 2021년 말 올해 경제운용방향에서도 개편 방침을 드러냈다. 하지만 정권 말 국정 동력이 약해진 데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어서 애초부터 개편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박근혜 정부 당시에도 개편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2015년 1월 박근혜 대통령이 “내국세가 늘면 교부금이 자동으로 증가하는 현행 제도를 과연 유지해야 하는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시했지만 끝내 교육계의 반발을 넘지 못했다. 당시 정부는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권고안대로 지방 일반재정과 지방교육재정의 칸막이를 없애거나 최소화하는 방안을 검토했었다. 이는 일본과 유럽식 모델로 학계에서 꾸준히 제기되지만 교육감 직선제 폐지가 전제돼야 가능한 장기적 과제로 꼽힌다.

교부금 제도가 만성적인 과밀 학급 해소와 고교 무상교육 실현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은 부인하지 못한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지금부터 드러난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학령인구는 올해 532만 명에서 2060년 302만 명으로 40년 동안 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장은 “지금도 교원 1인당 학생 수와 학급당 학생 수는 선진국 수준을 거의 따라잡았다”면서 “교원과 학급을 더 늘리지 않더라도 2030년쯤이면 양대 지표는 선진국 최상위권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지난해 교부금 산정 방식을 경제 규모와 인구의 변화에 맞춰 합리적으로 조정하면 2060년까지 해마다 25조 원씩, 총 1048조 원의 재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아 주목을 끌었다. 김 연구부장은 ‘KDI 교부금 공식’만 활용해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D1 기준) 비율을 2060년 28%포인트 끌어내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2021년 12월 초중등 교육재정 개혁을 촉구하는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장. /연합뉴스


관건은 교부금 수술의 강도인데 재정 당국의 의지가 썩 미덥지 못하다. 교부금 사용처를 고등교육까지 확대하겠다는 방향은 잡았지만 산정 방식을 포함한 전면 개편에 대해서는 주저하는 모습이다. 사용처를 확대한 만큼 재정 여력을 확충할 수 있으니 ‘엎어치나 메치나’ 결과는 같다는 논리라지만 임시변통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장 예상되는 문제는 초중등 교육계에서 교부금 법정 요율을 올려달라는 요구가 빗발칠 것이라는 점이다. 맥락은 다르지만 비슷한 사례가 있다. 법정 요율은 2019년과 2020년 연거푸 인상됐는데 이는 국세의 지방세 전환으로 발생하는 교부금 축소분을 벌충한 것으로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딱히 없다. 김 연구부장은 “대학 인구 역시 줄어들기는 마찬가지”라며 “교부금 수술의 대전제는 어디까지나 인구구조 변화 반영에 있다”고 강조했다.

대학별 배분 방식도 난제다. 대학들은 이구동성으로 고등교육 공교육비(본인 부담 포함)를 OECD 수준으로 끌어올려 달라고 요구하지만 속내는 제각각이다. 주요 사립대는 등록금 자율화에, 지방 대학은 재정 지원 확대에 방점을 둔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균형과 정치 논리에 휩쓸리면 자칫 개악될 우려가 크다. 나눠먹기식 교부금 투입이 부실 대학 연명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방대 육성’은 현 정부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균형 배분이라는 논리를 들이대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며 “재원 투입은 첨단 산업 기술 등 미래 인재 양성에 초점을 둬야 하고 지방 대학의 경우 특성화 대학 전환 등 구조조정과 연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교부금 남아돈다는데 교육세·지방교육세라니…


교육세는 초중등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해 1982년 한시세로 도입됐다가 1992년부터 영구세로 전환됐다. 특별소비세와 주세·교통세 등 다른 세목에 덧붙는 부가세 방식으로 걷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학령인구 감소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남아도는 마당에 별도의 교육세 유지가 온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교육세는 인구절벽 쇼크 이전에도 불합리한 세제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우선 목적세의 기본인 수익자 부담 원칙에 어긋난다. 교육 서비스를 제공 받는 국민 입장에서는 소득세와 주민세에 붙인다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겠지만 술을 마시거나 휘발유를 사는 데 교육세를 왜 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금융회사 이익금 일부를 교육세로 떼가는 것은 조세 편의주의라는 비판을 받는다.

조세체계가 복잡하고 세수 변동성이 높다는 맹점도 있다. 정부는 2008년 세제 개편안에서 교육세를 교통세·농어촌특별세와 함께 목적세 일괄 폐지의 도마에 올렸다가 교육계의 반대를 넘지 못했다. 국세인 교육세 외에 지방교육세도 있다. 목적과 용처가 같은 데도 국세와 지방세를 각각 5조 원, 7조 원씩 따로 걷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교육세는 고등교육 재원으로, 지방교육세는 초중등교육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교육세가 이처럼 변칙·누더기 세제로 전락한 것은 1991년 폐지된 방위세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정부는 온갖 국세와 지방세에 덧붙이던 방위세를 없애면서 세수 감소분을 벌충하기 위해 조세저항이 덜한 교육세를 영구화한 데 이어 2001년 지방교육세를 분리·신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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