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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칼럼]암호화폐 추락, 규제 계기 삼아야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저명 인사·공신력 있는 기관들 덕

'암호화폐=최첨단 통화' 이미지 구축

어려운 용어 들먹이며 투자자 현혹

포스트모던 피라미드 사기로 진화

금융안정 위협하기 전 조치 취해야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애매모호한 어법인 페드스피크를 즐겨 구사한다. 간단명료하거나 강력한 비유가 자칫 기사 제목으로 나가기라도 하면 큰 시장 움직임을 초래해 역풍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을 감안하면 암호화폐 규제에 관한 레이얼 브레이너드 연준 부의장의 최근 연설은 충격적이다. 암호화폐를 “돈 먹는 쓰레기”로 매도한 공매도 투자의 달인 짐 체이노스만큼은 아니지만 브레이너 부의장도 그와 비슷한 수준의 직구를 날렸다. 브레이너는 연설 첫머리에서 “규제 회피와 책임 있는 혁신 사이의 구분”을 강조하며 암호화폐 세계는 규제 회피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했다. 전통적인 금융 규제는 정당한 근거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 같은 규제를 우회함으로써 암호화폐는 ‘절도·해킹과 랜섬 공격, 돈세탁 및 테러 자금 조달’은 물론 예금 인출 사태에 취약한 환경을 조성한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일들을 제외하면 암호화폐는 별 문제가 없다.

브레이너의 장광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던 내용이다. 그렇다면 일반인들이 지금에서야 이처럼 심각한 규제의 필요성을 듣게 된 이유는 무얼까.

암호화폐는 2009년 이후 줄곧 우리 곁에 있었으나 현실 세계의 금융거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적이 없었다.

암호화폐의 가치는 절정기에 3조 달러에 달했다. 암호화폐는 어떻게 이런 가치를 지니게 됐을까. 미국 달러화에 연동돼 있다고는 하나 실제로 비규제 금융거래가 가진 모든 위험에 노출된 ‘스테이블코인’을 규제하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암호화폐의 연이은 추락은 대공황을 더욱 심각한 재앙으로 만든 금융기관의 줄도산을 떠올리게 한다.

암호화폐 업계가 실물경제에 많이 사용되는 상품을 생산해내지는 못했지만 마케팅 측면에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며 썩 괜찮은 최첨단 통화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이 같은 이미지 구축 작업에는 저명 인사들과 기관들이 동원됐다. 필자를 놀라게 한 것은 암호화폐가 유력한 기관과 개인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쌓아 올린 존경의 정도다.



예를 들어 디지털 결제 앱인 벤모를 사용한다고 가정해보자. 벤모는 현실 세계 거래에서 충분한 유용성을 과시했다. 이제는 노점 야채상들도 벤모를 받는다. 그런데 벤모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벤모 앱을 사용해 ‘암호화폐 여행을 시작하라’는 초대를 받는다. 앱을 살펴보면 ‘홈’과 ‘카드’ 바로 옆에 ‘크립토’ 탭이 자리 잡고 있다. 벤모가 거래 플랫폼을 제공할 정도면 크립토는 분명히 신뢰할 만한 디지털 화폐처럼 보인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도처에 있다. 암호화폐에 대해 배우고 싶은가. 많은 유명 대학들이 온라인 유료 강좌를 제공하니 어려울 게 없다.

암호화폐 업계의 주요 플레이어들에게 조언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은가. 최대 암호화폐 업체인 디지털커런시그룹 이사진에는 브루킹스연구소 이사회 공동회장이 포함돼있다. 이 그룹의 고문은 전 연방 재무장관이 맡고 있다.

주류 집단의 인정이라는 이 같은 후광을 감안하면 디지털 황제가 벌거숭이라는 사실을 누가 믿기나 하겠는가.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규제 당국의 암호화폐 단속을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브레이너가 분명히 밝혔듯이 대단히 수상쩍은 암호화폐에 주류 기관들과 인사들이 이렇듯 든든한 ‘커버’를 쳐주는 이유는 무얼까. 필자는 부정부패가 끼어든 게 아닌가 의심한다. 정직하게 보이는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받은 수표가 사실은 사기꾼이 발행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 사례가 종종 있다. 필자도 개인적으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암호화폐 띄우기에 나선 기관과 인사들은 전후 사정을 모르는 상태에서 대가성 없이 한 일이었다고 주장하겠지만 그들의 행위에는 금전적 보상이 개입돼 있다. 자체 플랫폼에서 암호화폐 매매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대가로 벤모가 얼마를 받는지는 모르지만 선의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는 분명히 아닐 터다.

필자가 보기에 암호화폐는 포스트모던 피라미드 사기의 일종으로 진화하고 있다. 암호화폐 업계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기술 용어와 자유의지를 주장하는 멍청이들을 앞세워 투자자들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여기서 나온 현금으로 그럴싸한 외관과 구조를 갖추며 더 많은 투자자들을 불러 모은다. 이후 리스크가 증폭되는 상황에서도 짧은 시간에 단속의 대상이 될 수 없을 만큼 몸집을 불린다.

브레이너는 암호화폐 가치 폭락이 효과적인 규제를 정치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암호화폐가 단순한 카지노 이상의 것이 돼서 금융 안정을 위협하기 전에 이번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는 대단히 유용한 충고다. 연준과 다른 정책 입안자들이 브레이너의 충고를 받아들이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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