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 제2외국어로 선택한 독일어 수업의 첫 수업 시간에 펼친 교과서 첫 페이지가 가끔 생각난다. 독일 어느 마을의 풍경을 담은 사진이었다. 주거지 사이사이로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마치 숲속의 마을이 담긴 동화 같은 사진을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쳐다보았던 기억이 있다. 당시는 내가 도시의 녹지 공간을 다루는 조경학을 공부하게 될지, 또 녹지의 환경적 기능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하던 시절이다. 대학에서 조경학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는 나를 돌이켜보면 그 당시 기억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씨앗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가끔씩 하게 된다.
최근 한국의 도시들을 보면 예전에 비해 녹지가 풍부한 도시로 변하고 있다고 사뭇 느낀다. 숲속 놀이터, 숲속 회의실처럼 도시에서 쉽게 접하는 일상 공간을 숲에서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폭염, 미세먼지, 탄소 저감 등 환경 문제에 시민들의 관심이 많아지면서 도시 숲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한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과거 도시 숲은 시민들이 여가 시간을 보내는 공간 혹은 도시경관 개선 요소로 주로 인식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환경적 효능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가고 있다. 무더운 여름 녹음이 풍부한 도시 숲이 주는 기온 저감 효과가 대표적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플라타너스 1그루의 도시 기후 완화 효과가 15평형 에어컨 5대를 5시간 가동한 효과와 맞먹는 등 도시 숲의 기후 조절 기능이 쾌적한 생활 환경에 기여한다. 1ha의 숲은 경유차 27대가 1년에 내뿜는 미세먼지에 해당하는 정도를 연간 흡착·흡수하는 미세먼지 저감 효과가 있다. 경기도는 시화산업단지 주변 완충 녹지 조성을 통해 인근 주거 단지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26% 낮아지는 효과를 냈다.
2050년 탄소 중립 전략에서도 도시 숲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잘 가꾸어진 숲은 방치된 숲에 비해 1ha당 연간 10.4톤의 탄소를 더 흡수한다고 알려졌다. 산림은 중요한 탄소 흡수원이라 탄소 흡수의 수단을 강화하기 위해 도시 숲 총량 확보를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특히 도시 숲은 기후 조절과 미세먼지 저감 기능으로 탄소 배출을 줄이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산림청은 도시 숲의 환경적 기능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도시 숲 등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과 시행규칙을 제정해 도시 숲의 기능을 기후보호형, 경관보호형, 재해방지형, 역사·문화형, 휴양·복지형, 미세먼지 저감형, 생태계 보전형’의 7가지로 구분했다. 또 도시 숲 정책을 담당하는 도시숲경관과를 조직하고 관련 예산은 2018년 46억 8500만 원에서 2022년 2687억 7400만 원까지 늘리는 등 도시 숲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원동력을 확보했다. 특히 2050 탄소 중립, 그린뉴딜, 미세먼지 관리 등 범정부 종합 대책에 도시 숲을 반영해 사업 추진 동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미세먼지 등의 생활권 유입·확산 억제를 위한 미세먼지 차단숲, 도심 내 대기 순환 유도를 위한 도시 바람길숲, 안전하고 쾌적한 통학·학습공간 조성을 위한 자녀 안심 그린숲, 생활 속 녹지 연결축 강화를 위한 가로수와 학교숲 등 생활권 내 다양한 도시숲을 발굴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이 바탕이 돼 언젠가는 독일어책에서 보았던 숲속의 도시를 우리의 도시에서 일상처럼 경험하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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