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가 10일 제23대 경찰청장으로 임명됐다. 지난달 4일 후보자로 지명된 지 37일 만이다.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 과정에서 사상 초유의 ‘경찰의 난’이 발생할 정도로 내홍을 겪은 끝에 14만 경찰 수장에 오른 윤 청장은 조직을 추스르는 동시에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확대된 수사권을 바탕으로 역량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풀어야 한다.
윤 청장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임기를 시작했다. 그는 취임식 대신 현충원을 참배한 후 집중호우로 주변 일대가 침수된 강남경찰서 대치지구대를 찾았다. 이 자리에서 윤 청장은 “대치지구대 또한 침수 피해를 입어 어려움이 많겠지만 민생 치안과 교통안전을 지키는데 한 치의 빈틈이 없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윤 청장이 취임식 대신 현장을 찾아 일선 경찰을 격려한 것은 경찰국 신설 과정에서 떨어진 경찰 조직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행보에도 경찰국 신설에 찬성한 윤 청장에 대한 조직 내 ‘비토’ 여론이 쉽게 사그라들지는 의문이다. ‘총경 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전 울산중부경찰서장에 대한 징계를 두고 일선 경찰들의 반발이 여전한데다 이달 말 출범할 예정인 경찰제도개선발전위원회에서 다뤄질 ‘경찰 개혁 방안’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윤 청장이 경찰국 신설 과정에서 많은 경찰 동료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취임하자마자 현장을 찾은 것도 현장 분위기를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검수완박으로 확대된 권한에 비해 여전히 부족한 수사 인력과 예산을 확충하는 것도 윤 청장에게 주어진 과제로 꼽힌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찰국 신설에 대한 ‘당근책’으로 인력·예산 확충을 제시한 상태다. 윤 청장은 이날 오후 전국에서 가장 많은 112 신고를 처리하는 강남경찰서 도곡지구대로 이동해 직원들의 애로 사항을 듣고 “현장 경찰관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윤 청장은 공안직 기본급 인상과 순경 공채 출신의 고위직 진출 기회 확대, 복수직급제 도입, 수련원·경찰병원을 비롯한 경찰관 복지시설 확충 등을 약속했다. 다만 정부가 긴축 재정을 기조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데다 윤 청장의 인사청문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은 야당이 국회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경찰 예산 증액이 당장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특히 경찰국 신설로 인해 경찰의 중립성·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하는 것은 윤 청장이 풀어야 할 최대 난제다. 벌써부터 더불어민주당은 “김건희 여사에 대한 수사는 서면에 그친 반면 이재명 의원의 부인인 김혜경 씨에 대한 수사는 속전속결로 이뤄지고 있다”며 수사 불공정성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성상납·증거인멸 의혹 수사도 경찰 수사의 중립성 여부를 엿볼 수 있는 가늠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내년 초에 이뤄질 국가수사본부장 인사는 경찰의 독립성을 지키겠다는 윤 청장에게 또 다른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후임 국수본부장에 비경찰 출신, 특히 검찰 출신이 임명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검수완박으로 그 어느 때보다 경찰의 권한이 커진 만큼 책임도 무겁다”면서 “국민의 신뢰를 얻는 방법이 무엇인지 윤 청장뿐 아니라 모든 경찰이 숙고할 때”라고 말했다.
한편 윤 청장 임명으로 한 자리가 빈 치안정감에 우종수 서울경찰청 수사차장이 승진하며 경찰청 차장으로 보임됐다. 또 박정보 강원경찰청 수사부장은 서울경찰청 수사차장(치안감)으로, 김수환 경무관은 경찰청 경무담당관실에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국장(치안감)으로 각각 승진·보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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