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당뇨약 '자누비아'에서 불순물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제약업계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습니다. 지난 9일(현지시각) 미국식품의약국(FDA)이 자누비아의 성분인 시타글립틴 일부 샘플에서 '니트로소-STG-19(NTTP)'라는 불순물이 검출됐음을 보고 받았다고 고지한 일이 발단이었죠.
이번에 검출된 NTTP는 니트로사민 계열 유기화합물의 일종으로 밝혀졌습니다. 3년 전 고혈압 치료제 성분인 발사르탄 원료의약품에서 발암 가능 물질 'NDMA(N-니트로소디메틸아민)'가 검출됐던 사건 기억하시나요? 당시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대량 리콜 사태가 펼쳐졌죠. NTTP는 바로 그 NDMA와 유사한 니트로사민 계열로, 과량 노출되면 암 발생 위험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단, 이번에 새롭게 발견된 화합물이라 의약품 제조과정 중 구체적으로 어떤 공정에서 생성된 것인지, 허용 가능한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FDA 역시 NTTP의 1일 최대 허용치를 246.7ng으로 제시하면서 ‘잠정’ 허용 기준이란 단서를 달았습니다. 관련 의약품을 복용 중인 환자들 대상으로는 임의로 복용을 중단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시중에 유통되는 시타글립틴 성분 의약품 중 잠정 허용 기준을 벗어나는 제품이 없다는 MSD(머크)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받아들여 별도 회수 조치를 내리지 않기로 했죠. 파장이 더 커지지 않은 채 일단락되는 분위기입니다.
사실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이번 논란은 다소 뒤늦은 감이 없지 않습니다. 유럽에서는 2개월 전쯤 한차례 불거졌던 이슈거든요. 앞서 유럽의약품청(EMA)은 지난 6월 니트로사민계 불순물 허용량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시타글립틴을 포함한 복수 의약품에 대한 불순물 가능성을 감지했습니다. 함량 조사는 물론 FDA,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주요 규제기관과도 긴밀하게 논의를 이어오던 상황입니다. 그런데 FDA 공식 홈페이지에 뒤늦게 문건이 올라오면서 새삼 다시 논란이 일게 된 셈이죠.
하지만 시타글립틴의 시장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결코 가벼운 사안만은 아닙니다. DPP-4 억제제 계열 대표 성분인 시타글립틴은 단일제 '자누비아'에 이어 복합제 '자누메트'가 연달아 흥행하며 전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매출을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작년 말 기준 두 제품의 글로벌 매출은 50억 달러가 넘습니다. 국내에서도 '자누비아'와 '자누메트' 2종은 지난해 1763억 원의 처방실적(유비스트 집계)을 올렸습니다. 시타글립틴 특허 만료를 앞두고 일찌감치 시타글립틴 성분 제네릭(복제약) 허가를 받아 놓은 제약사들도 수두룩한데요. 오리지널 제품인 '자누비아'를 포함해 시타글립틴 성분의 국내 허가 품목은 현재 250종에 육박합니다. 아직 시장에 유통 중인 단계가 아니라 과거 발사르탄 파동과 같은 혼란은 없었겠지만 수많은 제약사들의 제품 발매 일정에 큰 차질이 생길 뻔 했다는 얘기죠.
전문가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과거 예상치 못했던 불순물 검출이 지속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실제 2018년 발사르탄 파동 이후 라니티딘, 니자티딘, 이르베사르탄 등 사르탄계 고혈압 약물과 메트포르민, 바레니클린 등에서 불순물 검출 소식이 끊이질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제약·바이오기업들은 의약품 품질관리 역량을 강화하는 데 더욱 힘쓰게 되었습니다. 이를 관리 감독하는 규제기관의 역량도 한층 높아지면서 긍정적 변화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다만 잦은 논란으로 의약품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고, 환자들이 임의로 약물 복용을 중단할 수 있는 부작용도 존재합니다. 의도치 않은 불순물 검출, 그야말로 사고인데요. 이러한 리스크에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규제기관과 제약·바이오기업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것 같습니다.
◇‘약 읽어주는 안경진 기자’ 코너는 삶이 더 건강하고 즐거워지는 의약품 정보를 들려립니다. 새로운 성분의 신약부터 신약과 동등한 효능·효과 및 안전성을 입증한 제네릭의약품(복제약)에 이르기까지 매년 수없이 많은 의약품이 등장합니다. 과자 하나를 살 때도 성분을 따지게 되는 요즘, 내가 먹는 약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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