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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찢고서야 비로소 알게 된 '그림'

■강임윤 10년 만에 국내 개인전

남편 사고 후 2년치 그림 다 오려

자른 그림 재료 콜라주 신작 선봬

서촌 갤러리시몬서 10월1일까지

강임윤 '리브즈(Leaves)Ⅱ' /사진제공=갤러리시몬




신비로운 색감이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신화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역동적인 붓질이 잎사귀를 어루만지던 바람의 손길 같다. 꽃잎이기만 한 줄 알았던 것이 오려 붙인 캔버스 조각이라는 사실은 한참 들여다 본 후 깨닫게 된다. 대형 캔버스에 그린 완성작이 수년 전 작가에 의해 잘린 후, 콜라주 기법으로 다시 태어난 신작이다. 조각난 캔버스를 따라 켜켜이 쌓인 시간이 감지된다.

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추상화가 강임윤(41)이 10년 만에 국내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 종로구 서촌 갤러리시몬에서 한창인 ‘라 미아 이딸리아(La mia Italia)’, 우리말로는 ‘나의 이탈리아’다. 스무 살을 갓 넘기고 영국으로 간 작가는 런던 명문 슬레이드 미술학교를 졸업한 후 경쟁 치열한 왕립예술원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해 졸업 금메달까지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런던의 유력 화랑인 티모시 테일러 갤러리 전속작가로, 스위스 아트바젤에 출품해 ‘솔드아웃’으로 주목 받았던 그다.

강임윤 '필라스트로카(Filastrocca)' /사진제공=갤러리시몬


전도유망한 작가로 13년간 영국에서 생활한 강 작가는 결혼을 계기로 2014년 이탈리아로 터전을 옮겼다. ‘변신(Metamorphosis)’을 주제로 작업해 온 작가 자신에게 진짜 변신의 시기가 찾아왔다. “영국의 다습한 기온과 다르게 이탈리아는 안료가 잘 마르고 빛도 풍성했어요. 테라핀을 다량 섞어 묽게 만든 오일을 흐르는 느낌으로 표현했던 영국에서의 그림들이 이탈리아의 빛에 맞게 서서히 달라져 갔어요.”

제2의 고향 같은 영국과는 브렉시트 때문에 멀어져버렸다. 임신과 입덧 탓에 물감에 섞어 쓰는 테라핀 냄새를 못 맡게 됐다. 태아에게 해롭다는 화학 안료도 제외하다 보니 두세 가지의 한정된 색으로 작업해야 했고, 전시도 줄여야 했다. 그 시절 작품은 아기집을 연상하는 타원형 캔버스에 일필휘지 느낌의 ‘한 붓 그림’이 주를 이룬다.

그러던 중 사고가 났다. 남편이 산악자전거를 타다 다쳐 “온 몸이 산산조각” 났다. ‘예술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다’던 작가는 처음으로 “삶과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서 공존하는지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작업과 삶의 우선순위에 대해 생각했다. 영국에서 가져온, 에너지가 끓어 넘치던 시절의 작품을 보는 게 힘들었다.

종로구 갤러리시몬에서 10월1일까지 열리는 강임윤 개인전 '라 미아 이딸리아(La mia Italia)' 전시 전경. /사진제공=갤러리시몬


“내 스스로가 그림의 창조자로서 그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내 선택은 그림을 자르는 것이었고, 18점의 크고 작은 그림들을 몇 시간 동안이나 잘랐습니다. 2년간의 그림이 사라지는 순간이었어요. 겹치고 겹쳐진 시간들, 나의 상상의 산물이 작업실 바닥에 나동그라져 가죽의 껍질같이, 아니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같이 바닥에 쌓였습니다.”

남편의 고향인 볼로냐의 시댁을 방문했다 우연히 골동품 상에 들어갔다. 접힌 채 먼지가 수북한 그러나 그림 그리기에 적합한 삼베 천을 발견했다. 1940년대 이탈리아 여자들은 집에서 직접 짠 천을 혼수로 챙겼고, 특히 전쟁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생계 용도로 베를 짜곤 했다는 상점 주인의 설명을 들었다.



80년 된 낡은 천에서 강 작가는 기다림과 희망을 발견했다. 자신의 마음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다시 일어나길, 살아 돌아오길…. 토끼 가죽으로 만든 아교를 직접 삼베에 먹이고, 가내수공으로 짰기에 폭이 좁은 천을 손수 바느질 해 이어붙였다. 흉터같은 이음 자국, 주름살처럼 구겨진 흔적들을 고스란히 그림 속에 품어 안았다. “남편을 기다리는 아낙의 희망이었던 오래된 삼베는 그때부터 내 그림의 바탕이 됐습니다.”

종로구 갤러리시몬에서 10월1일까지 열리는 강임윤 개인전 '라 미아 이딸리아(La mia Italia)' 전시 전경. /사진제공=갤러리시몬


아트마켓의 중심 국가 영국을 떠나 시간이 멈춘듯한 고전의 나라 이탈리아로 와서, 궁극적으로는 얻은 게 더 많다. 동네 산책 중에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는 행운도 그 중 하나다. 다빈치의 작품에 감동했던 그날 밤, 긴 붓을 들고 하늘에 그림 그리는 꿈을 꿨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실제로 보면 생각보다 뿌옇습니다. 프레스코(벽화)를 그리면서 달걀을 섞어 템페라 기법으로 제작했기 때문이에요. 그 효과로 안개같이 느껴지는, 공기의 무게감과 밀도를 표현했어요. ‘모나리자’에서 확인할 수 있는 스푸마토 기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빈치 특유의 그 ‘미완의 느낌’을 그리고 싶어졌어요.”

전시장 1층의 대작은 그같은 노력의 결과들이다. 찢어버린 그림 조각으로 만든 콜라주 신작은 2층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는 3층까지 이어진다. 다빈치의 미완성 회화를 보는 듯한 아련함, 미지의 공간감이 탁월하다. 미완성은 열린 결말이다. 언제든 변화할 수 있다. 10월1일까지.

강임윤의 '리수스(Risus)'. 웃음이라는 뜻이다. /사진제공=갤러리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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