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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에서 취미, 취미에서 ‘업’으로, 레고로 덕업일치 이룬 브릭 아티스트 진케이

축학도에서 게임프로듀서 그리고 국내 1호 전업 브릭 아티스트가 되기까지, 흥미로운 ‘레고길’ 거쳐

유년 시절 가지고 놀던 네모반듯한 레고브릭이 어떻게 ‘예술품’으로 거듭나는지 궁금하다면 브릭 아티스트 진케이의 작품을 보면 된다. 적게는 수십 개, 많게는 수십 만 개의 브릭을 쌓아 만드는 그의 작품 세상은 한계가 없다. 건축학도에서 게임 프로듀서 그리고 국내 1호 전업 브릭 아티스트가 되기까지, 흥미로운 그의 ‘레고길’을 따라가 봤다.

사진 설명. 브릭 아티스트 진케이




꿈 있는 건축학도가 레고를 손에 쥐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그는 대학 졸업 후 유학 또는 설계사무소에 취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당시 IMF가 터지면서 계획대로 하기가 쉽지 않았다. 고민하던 중 우연치 않게 게임회사에 취직했다. 건축학을 공부하며 다진 기본기는 게임 만드는 일에 제법 도움이 되었고, 14년이란 긴 시간 동안 온라인게임 개발 업계에서 일하며 탄탄히 커리어를 쌓았다. 변화가 찾아온 건 스마트폰 등장 이후, 게임 환경이 모바일 중심으로 바뀌면서다.

“성과도 내고 나름 재미있게 일했지만, 모바일 환경이 저와는 잘 맞지 않더라고요. 스스로 즐기지 못하는데 어떻게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게임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죠."

고민이 깊어질 때쯤 디지털 영역에선 좀처럼 느낄 수 없는 ‘물성’이 그리워졌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아버지가 사 주신 레고가 떠올랐다. 그는 어려서부터 레고 마니아였다. 성인이 된 후에도 월급의 반을 쏟아부을 만큼 레고에 진심이었다. 단순히 설명서를 읽고 조립하는 것을 넘어 창작물을 만들어 낼 만큼 열정도 있었다. 기회는 뜻밖에 찾아왔다.

“블로그에 제 작업물을 기록하곤 했어요. 그걸 본 전시 관계자한테 출품을 제안하는 연락을 받았죠. <스팀펑크아트전>이라는 전시를 준비 중인데, 제 작품이 잘 어울릴 것 같다면서요.”

커리어에 대한 고민과 손에 만져지는 물성에 대한 그리움이 맞물리던 시기에 새로운 길이 열렸다. 그는 전시 주제에 맞춰 기계적 상상력을 불러내는 ‘코끼리’라는 작품을 제작해 2014년 3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스팀펑크아트전>에 선보였다. 요즘으로 치면 ‘연습생’ 기간 없는 초고속 데뷔였다. 이 무대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같은 해 5월, 과감히 회사를 관뒀다. 평생 ‘레고길’만 걷겠다는 결심이었다.

“국내에 브릭 작가라는 개념이 없었을 때라 두렵기도 했지만, 이것이라면 늙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저 테크닉이 좋은 작품이 아닌 미술적인 영역은 물론 인문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공부도 하면서 제 이야기와 가치관, 심미성이 담긴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되겠다고 다짐했죠.”

그는 개인적인 이야기뿐 아니라 노동, 환경, 인권, 동물권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도 안테나를 세우고 있다. 사회적 이슈와 관련 있는 작품을 준비할 때면 마음이 힘들어져 손을 못 댈 때도 있지만, 그 한계를 이겨냈을 때 더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인터뷰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브릭이 나에게 어떤 의미냐’는 거예요. 저는 ‘제 자신을 덜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브릭을 하나 둘 쌓는 일은 제 내면에 머무르던 슬픔, 즐거움 등 온갖 감정을 덜어내 오롯이 담아내는 일이거든요.”



사진 설명. BTS 브릭 아트월(좌), 'DIVE' 작품(우)


올해로 브릭 아티스트 9년 차. 모든 작품이 소중하지만, 작가로서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작품으로 3가지를 꼽았다. 전업 작가를 결심하게 한 ‘코끼리(2014)’, 멸종위기 동물에 대한 관심이 작품으로 이어진 ‘코뿔소(2015)’, 본격적으로 인체 작업을 시작하게 된 ‘해리하다(2018)’가 그것. 이밖에 2017년 태국의 한 쇼핑몰에 설치한 BTS 브릭 아트월과 2019년 청와대에도 초청받은 백범 김구 선생의 브릭 초상화는 국내외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다양한 기업과의 협업을 비롯해 아이들을 위한 클래스를 진행하는 등 ‘브릭아트 전도사’ 역할도 하고 있다. 최근에는 TV에도 얼굴을 비췄다. 세계적 프로그램인 레고 마스터즈의 한국판, MBC 예능 <블록버스터>에 출연해 고등학생 아들과 함께 팀케이 명으로 팀을 이뤄 활약한 것. <블록버스터>는 기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문법과는 달리 ‘훈훈한 서바이벌’을 그려내며 호평 받았다.

“어른들이 레고에 빠져드는 계기 중 하나는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추억 때문이에요. 자신의 추억이 투영된 놀이이다 보니 출연진들의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순수하다고 할까요? 그래서 다 같이 즐기는 분위기가 됐죠. 처음엔 출연을 망설였지만, 결과적으로는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TOP3로 최종화까지 출연하면서 아들과 소중한 추억을 진하게 쌓는다는 목표를 이루었거든요.”

그의 브릭 쌓기는 계속된다. 오는 10월, 창원 조각 비엔날레를 통해 처음으로 미술계의 문을 두드린다. 미디어 아트 작가와 협업해 한국의 전통적인 요소가 가미된 특별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인천시와 함께 사람들이 버린 폐브릭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다. 12월에는 올해 10주년을 맞는 ‘브릭코리아 컨벤션’에서도 운영위원으로 참여한다. 레고 초심자부터 마니아는 물론 브릭 아티스트를 꿈꾸는 이들에게 푸짐한 잔칫상 같은 이벤트가 될 것 같다.

브릭은 모양만 해도 그 종류가 2천 가지가 넘는다. 그 많은 브릭으로 작가가 궁극적으로 그리고 싶은 작품은 무엇일까?

“이건 목표라기보다는 꿈인데요. 특별한 주제도 없고, 이야기도 없는데 누가 봐도 아름답다는 감탄사가 나오는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여행을 가면 웅장한 대자연 앞에서 말을 잃고 그저 풍경에 압도될 때가 있잖아요. 언젠가는 그런 작품 하나는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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