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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9호는 위헌, 국가가 배상해야"

대법, 7년 만에 판례 변경

기본권 침해 등 불법행위에 해당

원심 깨고 손해배상 책임 인정

관련 소송만 33건…구제 전망

긴급조치 9호 피해자의 법률대리인 김형태 변호사(오른쪽 네 번째)가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대법원 판결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5년 발령한 ‘긴급조치 9호’로 체포·구금되거나 처벌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긴급조치 9호가 위헌인 데다 민사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대통령 권력 행사가 정치 행위라 배상 책임이 없다’는 취지의 앞선 대법원 판결이 7년 만에 뒤집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긴급조치 9호’ 피해자 A 씨 등 71명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는 위헌·무효임이 명백하고 긴급조치 9호 발령으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는 강제 수사와 공소 제기(기소), 유죄 판결의 선고를 통해 현실화했다”며 “일련의 국가 작용은 ‘전체적’으로 보아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객관적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해 객관·정당성을 상실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밝혔다. 대통령뿐 아니라 수사기관과 법원 등 다수의 공무원이 광범위하게 관여한 국가 작용으로 국민이 손해를 입었다면 전체적으로 불법행위가 성립한다는 의미다. 대법원은 이어 “긴급조치 9호의 적용·집행으로 강제 수사를 받거나 유죄 판결을 선고받고 복역함으로써 개별 국민이 입은 손해에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긴급조치 9호는 1972년 박정희 정권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뒤 발동한 조치 가운데 하나다. 당시 정부는 유신헌법을 부정·반대·왜곡·비방하는 행위를 금지했고 이를 위반하면 영장 없이 체포해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소송 원고인 A 씨 등도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체포·기소돼 유죄 판결을 선고받아 형을 복역했다. 이들은 2013년 긴급조치 9호 발령 행위와 이에 근거한 수사·재판이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며 국가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2심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 발령 자체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이에 근거한 수사와 재판 역시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2015년 3월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가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이자 유신헌법과 현행 헌법이 규정한 표현의 자유와 영장주의와 신체의 자유, 주거의 자유, 청원권, 학문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위헌·무효”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가 국가 행위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권리에 대한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배상 책임이 없다고 봤다.

다만 대통령 등 공무원 개인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법관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대법관 다수는 대통령이나 법관 등 공무원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김선수·오경미 대법관은 “대통령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위법한 직무 행위로서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된다”는 의견을 냈다. 또 재판을 한 법관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현재 진행 중인 긴급조치 9호 관련 소송은 총 33건으로 이번 판결에 따라 소송 당사자들은 국가배상을 인정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원 소급효 금지 원칙에 따라 전원합의체 결정 이전에 기각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이 추가 소송을 통해 구제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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