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전세계는 '발등의 弗'인데…美, 강달러로 '나홀로 인플레 방어'

[수퍼달러 폭주…실질 달러지수 최고 수준]

유럽, 에너지 위기 속 물가 상승 부담

日 '엔저 수출경쟁력 상승' 공식 깨져

안전자산 달러 수요 높아져 강세 지속

美, 8월 고용 31.5만건 늘며 '호조세'

연준도 금리인상 행보 완화 조짐 없어

독일 함부르크에서 ‘인플레이션 괴물을 멈춰라’라는 현수막 아래에서 근로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올 7월 일본의 무역수지 적자가 1조 4368억 엔(약 14조 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 늘어났지만 수입은 무려 47.2%나 급증했다.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가 연일 급락하면서 원자재 등의 수입 가격이 급등한 것이다.

엔저가 일본의 수출 경쟁력을 높인다는 경제 공식은 이미 구문이 됐다. 다이와증권에 따르면 엔화 가치가 달러 대비 1엔 떨어질 때마다 상장기업의 경상이익이 0.4% 줄어든다. 20년 전인 2002년 당시 엔화 가치가 1엔 떨어졌을 때 기업들의 경상이익이 0.7% 늘었던 것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일본 기업들은 전 세계에서 원자재를 구매해서 쓰기 때문에 엔저가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없다”며 “엔화 약세는 일본 경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연일 치솟는 미 달러화 가치에 세계 주요국 통화의 마지노선이 속속 무너지면서 세계 경제가 ‘킹 달러’ 부활의 부작용에 시름하고 있다. 1달러당 140엔이라는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진 일본은 물론 달러-유로 패리티가 무너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1달러당 1파운드 패리티 붕괴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영국 등 세계 각국의 경제가 기록적인 달러화 강세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과 그에 따른 경기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달러화가 역사적인 수준으로 오르면서 정책적으로 엔화 약세를 용인하는 일본 정부 내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은 2일 각의 기자회견에서 “최근 환율 변동이 다소 커지고 있어 높은 긴장감을 가지고 주시하겠다”며 “필요한 경우 적절한 대응을 취하겠다”고 구두 개입했다. 기업들의 해외 생산이 급증하면서 이제 엔저는 무역 흑자 요인이 아니라 적자를 일으키는 요인이다. 실제 올 상반기 일본 무역적자는 8조 엔에 육박하며 상반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일본 소비자물가상승률(CPI)은 최근 4개월 연속 일본은행(BOJ) 목표치인 2%를 웃돌았다.



유럽의 경우 달러화 강세로 에너지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 가뜩이나 공급 부족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한 와중에 달러화 가치마저 뛰면서 에너지 수입에 지불해야 할 자국 통화가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국제 액화천연가스(LNG) 현물 가격 지표인 JKM은 지난달 25~26일 마감 기준 100만BTU(열량 단위)당 69.665달러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3월 2일(50.68달러)에 비해 35.5% 상승했다. 여기에 유로화 가치가 올 들어 12%가량 하락한 점을 고려하면 12%의 추가 비용이 더 발생한 셈이다. 크리스티안 코프 유니온인베스트먼트 채권헤드는 “에너지 가격이 올라도 달러화는 타격을 입지 않으니 유럽과 같은 에너지 수입국들은 강달러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다”며 강달러 앞에 속수무책이라고 평가했다.

가뜩이나 심각한 인플레이션은 강달러 여파로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유로존 물가 상승률은 8월 9.1%를 기록하며 10개월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 전문가들은 달러화 강세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이 인플레이션의 한 축을 차지한다고 지적한다. 중국 역시 달러당 위안화 환율이 심리적 저지선으로 불리는 ‘포치(破七·달러당 7위안대)’에 근접하면서 당국의 긴장감이 높아졌다. 중국 물가가 아직은 당국의 관리 범위(3%) 이내라는 점에 위안화 약세를 용인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지만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을 결정하는 10월 당 대회를 앞둔 시점에 수입물가 불안은 당국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전 세계가 외환시장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에서 관건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행보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8~9% 수준의 고공 행진을 이어가면서 연준은 통화정책을 완화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 노동부가 2일(현지 시간) 발표한 고용 보고서 역시 연준의 긴축 행보에 힘을 더했다. 지난달 미국의 비농업 일자리는 31만 5000건 증가하며 블룸버그의 예상치인 29만 8000건을 웃돌았다. 8월 실업률은 3.7%로 한 달 전보다 0.2%포인트 올랐으나 경제활동 참가자가 크게 늘어 노동시장의 탄탄함을 반영했다. 이는 연준에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침체 부담을 줄여준다.

미국의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면 달러 채권 등 달러화 표시 자산 수요가 늘어 달러화 가치는 더 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국 입장에서 강달러는 수입물가를 낮춰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돼 실(失)보다 득(得)이 더 크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강달러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공격적 긴축을 예고한 만큼 달러화 강세가 세계 주요 경제권역의 침체 위기를 높이고 또다시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를 높이는 악순환이 지속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외환시장에서는 일본 엔화가 달러당 147엔까지 오르고 영국 파운드화가 내년 중 사상 최저 수준인 파운드당 1.05달러 수준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네덜란드 기반의 다국적 금융 업체인 라보뱅크의 제인 폴리 외환전략헤드는 “현재 다른 주요국 통화가 킹 달러에 맞서 싸우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달러를 판다면 어느 통화를 살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달러 강세가 계속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루치르 샤르마 록펠러인터내셔널 의장은 “통상 선진국에서 무역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5%를 넘어서면 해당 국가의 금융 상황이 악화된다는 신호”라며 “미국의 무역적자는 5%에 근접했고, 성장세는 향후 수년간 하락할 것이며 경제가 안 좋으면 통화 가치는 하락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