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기자가 찾은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재활병원 뒷편의 중입자치료센터 가속기실. 지하 4층·지상 9층 규모 센터의 ‘심장’ 역할을 하는 곳이다. 첫 눈에 들어온 것은 직경 20m, 높이 1m 크기에 무게가 220여 톤이 넘는 싱크로트론(synchrotron·가속기). 거대한 규모에 입이 벌어졌다. 병원이 아닌 초대형 발전소 같은 느낌이다. 싱크로트론은 중입자치료기의 '엔진' 역할을 담당하는 핵심 기기다. 연두색으로 보이는 중앙 그물망에서 탄소입자를 가속회로로 공급하면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는 파란색 전도자석들이 빛의 속도의 70%까지 가속시켜 치료실로 내보낸다. 가속기실과 연결된 치료실 3곳에는 이미 고정형 치료기 1대와 회전형 2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각 치료기는 암 환자에게 중입자 빔을 조사해 몸 속 암세포를 없애는 치료를 하게 된다. 이익재 연세암병원 방사선치료센터장은 “내년 3월 말께 고정형 치료기부터 본격 가동할 계획”이라며 "360도 돌아가는 회전형까지 치료기 3대를 모두 운영할 수 있는 시점은 2024년 3~4월 정도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연세의료원이 내년 봄 국내 최초로 시작하는 중입자치료는 X선을 이용하는 기존 방사선치료와 달리 탄소 이온을 이용하는 최신 암치료법이다. 양성자치료에 사용되는 수소입자보다 12배 무거운 탄소입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켜 종양 부위에 쏘면 암세포의 DNA를 파괴한다. 질량이 무거운 만큼 암세포가 받는 충격 강도가 커지다 보니 기존 방사선치료보다 생물학적 효과가 2~3배 가량 높다.
환자 한 명당 치료 시간은 2분 정도에 불과한 데다 치료 후 바로 귀가도 가능하다. 김용배 연세암병원 부원장(방사선종양학과 교수)은 "주변 정상조직 손상을 최소화해 환자가 겪는 치료 부작용과 후유증도 적다"며 "암환자들의 삶의 질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현재 중입자치료기는 일본·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대만·중국 등 6개 국가에서 10여 대 정도만 운영 중이다. 회전형 치료기를 2대나 설치한 사례는 처음이다. 한국에 방사선치료를 처음 선보였던 연세의료원은 국내 도입 100주년에 맞춰 중입자치료센터를 운영하기 위해 오랜 기간 공을 들였다. 중입자와 양성자치료를 비교해 최종적으로 중입자치료기 도입을 결정하는 데만 3년 가까이 걸렸다. 2016년 4월 이사회 승인이 떨어지고 2018년 3월 일본 도시바와 치료기 도입 계약이 체결되자 마침내 센터 구축 작업에도 속도가 붙었다. 이들 장비는 두께 2m인 차폐벽 안에 설치해야 가동할 수 있다. 최신 중입자치료기를 들여오고 센터를 구축하기까지 연세의료원이 투입한 비용은 약 3000억 원에 달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중입자치료를 시작해 가장 많은 의료 데이터를 구축한 일본 의료기관에 의료진을 파견해 노하우를 전수받는 데도 힘을 쏟았다.
연세의료원은 치료기의 시험가동을 마치는 대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획득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협의를 거쳐 치료비를 결정할 방침이다. 내년 봄부터 중입자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환자들의 부담이 줄어들고 편의성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일부 국내 암환자들은 일본·독일 등으로 원정치료를 받으며 회당 1억~2억 원 상당의 비용을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동섭 연세의료원장은 “중입자치료는 3대 난치암으로 꼽히는 췌장암·폐암·간암에서 생존율을 2배 이상 끌어올릴 것”이라며 “골연부조직 육종·척삭종·악성 흑색종 등 희귀암은 물론, 전립선암 치료 등에도 널리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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