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실에서 오랜 기간 갈등을 빚어온 윌리엄 왕세자와 해리 왕자 형제가 19일(현지시간) 할머니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서도 냉랭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생전 손자들의 화해를 바랐던 여왕의 꿈은 당분간 실현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장례식 당일 입장 순서도 왕위 계승 서열에 따라 철저히 이뤄지며 두 사람의 벌어진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윌리엄 왕세자의 자녀인 조지 왕자와 샬럿 공주 뒤에 해리 왕자가 위치해서 입장했기 때문이다.
영국 가디언 등 현지 언론은 이날 “윌리엄 왕세자와 해리 왕자가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따뜻함도 없었다”라며 “여왕의 장례식에서 둘은 줄곧 거리를 유지했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시기는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왕자빈이 결혼식을 올리며 왕실 일원에서 탈퇴하면서다. 이후 메건 마클 왕자빈이 지난해 3월 언론 인터뷰에서 왕실의 구성원들로부터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격화했다.
하지만 지난 8일 여왕이 세상을 떠나면서 두 사람의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보도가 쏟아져 나오기도 했었다.
특히 지난 13일 왕실 가족 전체가 버킹엄궁에서 함께 비공개 저녁 식사 시간을 가졌고, 이 자리에서 윌리엄 왕세자와 해리 왕자가 많은 대화를 나눴다는 자세한 소식까지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례 일정 내내 영국 왕실과 국민의 바람과 달리 두 사람은 여왕의 장례식에서 풀리지 않은 앙금을 노출했다.
군 장교 정복을 착용한 윌리엄 왕세자가 여왕의 관을 향해 경례하는 모습과 상반되게 양복을 입은 해리 왕자는 땅만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여러 차례 포착됐다. 왕실을 정식으로 탈퇴한 해리 왕자는 모든 군 칭호를 박탈당해 장례식에서 군복 착용이 금지됐다.
운구 행렬에서도 윌리엄 왕세자와 해리 왕자의 왕실 내 존재감 격차가 드러났다.
국왕인 찰스 3세 부부와 앤 공주 부부 등 여왕의 친자녀들이 행렬 앞에 섰고, 나머지 가족은 왕위 계승 서열에 따라 걷는 가운데 해리 왕자는 조카인 조지 왕자와 샬럿 공주 뒤인 행렬 끝자락에 위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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