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9일 폭스뉴스의 터커 칼슨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정책에 맹공을 퍼부었다. 그는 “현실에 기초한 판단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은 우크라이나에서 이기고 있다”면서 “바이든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이유는 그가 서구의 몰락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다.
칼슨의 타이밍은 기막혔다. 그로부터 불과 며칠 후 하르키우 인근의 러시아 전선이 우크라이나의 공격에 무너졌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러시아군이 하르키우에서 단순히 밀려난 것이 아니라 보급 물자와 장비까지 내팽개치고 공포에 사로잡힌 채 앞다퉈 퇴각했다는 사실이다.
러시아군의 붕괴는 서방측이 공급한 무기가 우크라이나에 유리한 쪽으로 전세를 바꿔 놓았다는 국방 전문가들의 분석이 옳았음을 보여준다. 현재 푸틴의 러시아군은 장기간의 소모전과 후방의 보급 기지를 겨냥한 우크라이나의 미사일 공격으로 막대한 손실을 본 데 이어 심각한 병력 부족까지 겹치면서 사기가 크게 떨어진 상태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예상보다 빨리 수습하기 힘든 상황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러시아의 승리라는 환상에 매달린 사람들은 칼슨을 비롯한 푸틴의 우익 응원단이 전부가 아니다. ‘현실주의자’를 자처하는 ‘도널드 트럼프의 열성 지지자(MAGA)’들은 푸틴의 초반 공세가 실패로 끝난 후 6개월이 지나도록 우크라이나를 향해 무모한 저항을 끝내고 우월한 화력을 지닌 러시아에 대폭 양보할 것을 촉구했다.
러시아군의 막강 신화를 전폭 수용한 MAGA 우파의 태도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터프 가이 행세를 실제 능력과 동일시하는 MAGA 공화당의 집단 착시 현상이다. 이처럼 왜곡된 시각은 비단 러시아군의 전투력에 관한 그릇된 인식뿐 아니라 많은 주요 이슈의 실상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에 손상을 입힌다는 점에서 그 근원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공화당 인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푸틴을 찬양했다. 루돌프 줄리아니는 2014년 푸틴에 대해 “우리가 말하는 지도력을 갖췄다”고 극찬했다. 더구나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도 푸틴을 칭찬했다.
이쯤 되면 푸틴주의에 대한 MAGA 우파의 찬양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결국 푸틴의 러시아는 독재국가이고 잔인하며 동성애를 혐오하는 통치자를 중심으로 세워진 개인숭배 집단이다. MAGA 공화당과 다른 게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특정 정권의 가치를 찬양한다고 해당 국가의 군사력까지 신봉하지는 않는다. 강력한 사회 안전망을 옹호하는 중도 좌파로서 혹은 공화당이 말하는 마르크시스트로서 필자는 덴마크와 같은 북유럽 복지국가들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필자는 덴마크의 군사력에 관한 어떤 견해도 갖고 있지 않다.
우파들의 독재 정권에 대한 호의는 그들의 군사력과 연결돼 있다. 미군은 어느 정도 의식화돼 있다. 군이 인종적 다양성과 포용성을 갖추고 있고 하급 장교들의 독립적인 사고와 능동성을 장려하며 상층부 구성원들이 대단히 지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반면 러시아군은 의식화와 거리가 멀다. 신병들은 고참들의 잔인한 괴롭힘에 시달린다. 전 유럽 주둔 미군 사령관인 마크 허틀링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마피아를 연상시킬 만큼 부패했고 장교들의 질 또한 한심한 수준이다.
이보다 훨씬 중요한 점은 현대전에서 거친 외양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보여준 용기는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지만 울뚝불뚝한 삼두박근은 별 소용이 없다. 또한 용기는 지력 및 유연성과 연결돼야 하는데 이는 러시아군에서 찾아보기 힘든 덕목이다. 앞에서 우크라이나군의 5분의 1 이상이 여성으로 채워졌다는 사실을 언급했던가.
이런 요인들을 종합해 보면 확실한 그림이 그려진다. 현대전은 현대 경제와 흡사하다. 성공은 근력이 아니라 기술, 지식과 열린 마음에 달렸다.
그러나 MAGA의 정서는 거친 말과 전문성 폄훼에 바탕을 둔다. 미국 우파는 푸틴에 관해 진보적 가치를 거부해 강력한 힘을 갖게 된 지도자로 평가한다. 러시아가 더 이상 강국이 아니라는 사실이 입증됐음을 인정하는 순간 MAGA의 철학에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의 자유를 위한 싸움은 묘하게도 미국의 문화적·정치적 전쟁의 전선이 됐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모스크바의 완전한 패배로 끝날 경우 러시아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온갖 추측이 일고 있다. 또 때로는 터프 가이도 꼴찌를 한다는 사실을 미국의 우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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