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서해 공무원 사망 사건 관련해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서면 조사를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국이 다시 급랭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첫 국정감사를 앞둔 상황에서 감사원의 칼끝이 문 전 대통령을 향하면서 신구 권력 간 정면충돌 양상으로 번질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9월 28일 감사원에서 평산마을 비서실로 전화를 걸어 서면 조사를 요청했고 비서실은 감사원에서 하려는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한 확인을 요청하며 질문서 수령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감사원이 문 전 대통령의 서면 조사를 요구하는 내용의 메일을 비서실로 발송했고 30일 비서실은 메일을 반송시켰다”며 “감사원의 권한이 아닌 것을 하는 데 대한 수령 거부의 뜻을 밝힌 것”이라고 부연했다.
감사원의 서면 조사 요구에 문 전 대통령은 상당한 불쾌함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윤 의원은 “문 전 대통령께서는 감사원의 서면 조사 요구가 ‘대단히 무례한 짓’이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서면 조사는 최재해 감사원장의 결재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며 “감사원장이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을 내팽개치고 권력의 하수인처럼 나섰다. 명백히 진상을 밝히고 배후 세력이 있다면 누구인지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요 현안에 말을 아껴온 이재명 대표도 페이스북을 통해 “온갖 국가 사정 기관이 충성 경쟁 하듯 전 정부와 전직 대통령 공격에 나서고 있다. 유신 공포정치가 연상된다”면서 “국민과 역사를 두려워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당내 ‘윤석열 정권 정치탄압대책위원회’를 이끄는 박범계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의 방법이 ‘과잉 금지 및 비례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해 감사권 남용(직권남용)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은 감사원의 서면 조사 통보를 거부한 문 전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서 사법·감사에 성역이 있을 수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압박 강도를 높였다. 윤석열 대통령 순방 논란 등으로 당정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는 상황에서 문 전 대통령의 감사원 서면 조사 거부를 반등의 계기로 만들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문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국정원장을 모두 다 법의 심판에 맡겼던 분”이라며 “문 전 대통령이 감사원 서면 조사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이번 조사를 정치 보복으로 규정한 데 대해서도 “전직 대통령들도 퇴임 후 감사원의 서면 조사 요구를 받았던 사례가 있었다”며 “유독 문 전 대통령에게만 서면 조사를 요구하는 게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양금희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민주당의 눈에는 정녕 북한에 사살당해 불태워진 우리 국민의 죽음과 유족의 피눈물이 보이지 않느냐”며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감사원 감사뿐 아니라 국가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동혁 원내대변인도 “문 전 대통령이 감사원에 그대로 되돌려 보낸 메일은 유족들의 가슴을 찌르고 심장을 피멍 들게 할 것”이라며 “문 전 대통령은 국민들의 준엄한 질문에 답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직전 원내대표를 지낸 권성동 의원은 이 대표가 ‘공포정치’를 언급한 것을 두고 “조사를 앞두고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자기 고백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법과 절차에 ‘불쾌’ 따위를 논하며 비협조적으로 일관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헌정사의 수치로 기록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 전 대통령 서면 조사를 둘러싼 여야 공방은 11일로 예정된 감사원 국정감사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문 전 대통령에게 서면 조사를 요구한 서해 공무원 사망 사건을 비롯해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감사가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하고 있다고 집중 추궁할 방침이다. 이에 맞서는 국민의힘은 감사원의 감사가 법적 정당성을 갖췄다는 점을 부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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