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예술은 진정한 순수함을 원해요. 모든 복잡함이나 기술을 떠나, 단순함이 남아 있을 때 예술은 살아납니다.”
단순한 선과 원초적 색으로 화면을 채워 ‘생명의 화가’로 불리는 재독화가 노은님이 18일(한국시간) 별세했다. 향년 76세.
1946년 전주에서 태어난 노은님은 파독간호사로 독일로 건너간 후 독학으로 그림을 익혀 1972년 근무하던 독일 병원 회의실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입소문을 타고 함부르크의 지역 신문에 보도될 정도로 화제가 됐고, 이후 함부루크 국립미술대학에서 정식으로 수학했다. 노은님은 독일 표현주의에 동양철학의 존재론을 결합해 이룬 무위자연의 독창적 화풍을 이뤘다.
그는 한국 여성작가 최초로 국립 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의 정교수로 임용돼 20여 년간 독일 미술 교육에 기여했다. 동시에 바우하우스, 베를린 세계 문화의 집, 베를린 도큐멘타, 국제 평화 비엔날레 등에 초청돼 고유의 작품세계를 선보였다. 1986년작 ‘해질 무렵의 동물’은 카프카의 ‘변신’과 나란히 프랑스 중학교 문학 교과서에 수록됐다.
2019년 11월에는 독일 미헬슈타트의 시립미술관에 그를 기리는 영구 전시관이 개관했다. 비독일 출생의 작가로는 최초였다.
노은님은 ‘자연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이를 구성하는 힘은 어떻게 작용하는 것인지’를 평생의 화두로 삼았다. 바닥에 커다란 한지, 여러 개의 캔버스 천 등을 한꺼번에 늘어놓고 붓, 빗자루, 걸레 등 손에 잡히는 도구를 즉흥적으로 사용한다. 긋고, 칠하고, 던지고, 찍어 누르는 격정적인 과정을 통해 완성된 작품은 새처럼 보이는 동시에 물고기로도 보이는 반추상의 자유로운 화면을 가진다. 독일의 미술평론가인 아넬리 폴렌(Annelie Pohlen)은 노은님의 작품을 두고 “동양의 명상과 유럽의 표현주의를 잇는 다리”라고 극찬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