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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식시킨 구리판 위 적나라한 삶의 흔적

현대미술 거장 라우센버그 개인전

예수상·염소박제·낙서·신문기사 등

우리 주변서 재료 찾아 그림에 담아

1980년대 '코퍼헤드 바이트' 연작

타데우스로팍갤러리 내달 23일까지

1985년 칠레 산티아고 국립미술관에서 '라우센버그 해외문화교류전'을 열고 '코퍼헤드 바이트' 연작 앞에 선 로버트 라우센버그. /사진제공=타데우스 로팍 ⓒ The Robert Rauschenberg Foundation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지워버린 그림’이었다. 그것도 남의, 값비싼 작품 말이다. 전후 현대미술에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 화가 로버트 라우센버그(1925~2008)의 1953년작 ‘지워진 드쿠닝 드로잉’은 추상표현주의의 선구자 빌렘 드쿠닝의 드로잉을 싹 지워버리고 자신의 서명을 넣은 그림이었다. 유명세를 안겨준 ‘침대’(1955)는 캔버스 살 돈이 없어 사용하던 이불에 물감을 바른 것이었다. 그에게 그림은 묘사하거나, 감정을 표현하는 전통적 의미가 아니었다. 삶 그 자체를 예술에 담는 게 중요했다.

거장이며, 한동안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톱10에 들었던 작가 라우센버그의 개인전이 3일부터 용산구 독서당로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 열린다. 라우센버그 재단과 공동으로 기획해 1980년대 주요 연작 중 하나인 ‘코퍼헤드 바이트(Copperhead Bites)’를 집중적으로 선보였다.

“회화란 예술과 삶 모두에 연결된다. 어느 것도 만들어질 수는 없고, 나는 이 둘 사이의 틈에서 행동하고자 한다.”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1985년작 '코퍼헤드 바이트VI /로키 칠레' /사진제공=타데우스 로팍 ⓒ The Robert Rauschenberg Foundation


라우센버그는 1984년 멕시코를 시작으로 베네수엘라,쿠바,구소련,중국 등을 누비며 해외문화 교류 프로젝트를 전개했다. 이름하여 ‘로키(ROCI·Rauschenberg Oversea Culture Interchange)’. 이번 전시작은 1984년 방문한 칠레에서 착안하고 제작된 ‘로키 칠레’ 작업들이다

전시장에 걸린 반짝이는 구릿빛 작품에는 예수상과 공동묘지의 십자가, 길러리 낙서그림, 얽히고 꼬인 전선, 닭 등 칠레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상적 장면이 겹겹이 담겨 있다. 존경했던 인디라 간디의 피살 소식을 전한 신문도 동판에 새겼는데, 피노체트 독재에 저항했던 시민 200여 명이 연행됐다는 기사가 함께 보인다. 칠레의 여유로운 해변,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땅과 사막, 환경오염으로 오갈데 없어진 새들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 3일 개막해 12월23일까지 열리는 로버트 라우센버그 개인전 '코퍼헤드 1985/1989' 전경. /사진제공=타데우스 로팍


구리 생산 강국 칠레에서 작가는 구리판 표면을 부식시키고 변색하는 기법을 익혔다. 이미 라우센버그는 1962년 방문한 앤디 워홀의 작업실에서 판화기법의 일종인 실크스크린도 배운 터였다. 칠레의 대표 산물을 생산하는 구리광산은 경제 거점인 동시에 인권유린과 노동착취가 벌어지는 곳임을 작가가 놓치지 않았다. 일부러 광택나는 구리를 사용한 까닭에 작품은 관람객 자신과 주변 모습 전체를 비춰 보인다.

‘코퍼헤드 바이트’라는 제목에 대해 라우센버그는 “작품 속 이미지들이 구리를 베어 문 자국인 셈”이라고 말한 적 있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는 "라우센버그는 염소 박제,폐타이어,콜라병, 버려진 잡지책 등 도시에서 찾은 것들을 재료로 사용해 일상 속 예술품이라 부를 수 없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보았다”면서 “평온한 일상과 잔혹한 역사, 초라한 죽음과 안락한 레저처럼 극도로 상반된 양축 사이의 광대한 스펙트럼을 견고한 구리 위에 펼쳐보였다”고 평했다.







라우센버그는 독일의 바우하우스 격인 미국의 인문학적 예술학교 ‘블랙마운틴’에서 공부했다. 1951년에 순백의 ‘화이트 페인팅’을 선보였고, 절친 존 케이지는 이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연주 없이 일상 소음을 음악으로 끌어들인 ‘4분33초’(1952)를 제작했다. 1964년 베니스비엔날레에 미국작가 최연소로 참가해 회화 부문 대상을 받았다. 대중문화 아이콘을 사용하는 화려한 ‘팝아트’와 다르지만, 대중과 일상 그 자체를 예술에 담았기에 팝아트 대표로 꼽힌다. 폐타이어에 낀 염소 박제를 그림위에 올려 놓는 등 회화와 일상 오브제를 결합한 ‘콤바인 페인팅’이 제일 유명하다. 아름다운 데다 아련함 때문에 더 오래 보게 된다. 12월2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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