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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빌딩숲 사이 '쉼'의 공간…'시위' 대신 '시민' 품다

■광화문광장

세종대로 사이서 섬처럼 고립됐던 광장

서쪽 세종문화회관 땅 연결해 영토 넓혀

77종 나무 5000그루·잔디로 '녹색단장'

광장 아래 매장된 조선시대 유물도 전시

집회·시위 공론의 장서 '시민쉼터' 변신

월대 복원·해치상 이전 내년 말께 완료

2022년 8월 6일 재개장한 광화문광장 전경. 세종대로 사이 섬처럼 고립괘 있던 광장을 서쪽으로 확장해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서울청사 본관이 있는 땅과 잇고 녹지 공간으로 채웠다. 이성우 작가




대지를 가로지르는 광장 속에서 사람들이 뒤섞였다. 누군가는 짙은색 정장 차림에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바삐 걸었고 개량 한복을 입은 다른 누군가는 스마트폰을 쥐고 사진을 찍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이가 있었고 손을 잡고 산책을 즐기는 노인들이 있었다. 끊임없이 교차하는 인파 너머로 광화문(光化門)은 고목처럼 서 있었다. 아래로는 권위주의 정권 시대 지어진 거대한 석조 건물과 현대적인 마천루가 뒤섞여 광장을 내려다봤다. 2022년 말 서울 ‘광화문광장’의 이야기다.

◇고립된 섬을 육지와 연결시키다= 광화문광장은 올해 8월 6일 새로 태어났다. 당초 수많은 자동차가 지나치는 세종대로 사이 섬처럼 고립돼 있던 광장은 서쪽으로 확장돼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서울청사 본관이 있는 땅과 연결됐다. 35m였던 광장 폭은 60m로 확대됐고 1만 88404㎡였던 총 면적은 4만 300㎡로 넓어졌다. 4만㎡는 축구장 약 6개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다. 공간이 확장된 광장 서편은 한국 수종을 중심으로 77종의 나무 5000그루와 2285㎡의 잔디 등으로 이뤄진 녹지 공간으로 채워졌다. 정오께 광장을 찾으면 녹지화된 공간 속에서 시민들이 공원을 거닐 듯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서울시는 광장을 재개장하며 광장 아래 매장돼 있던 조선시대 유물을 발굴해 전시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광화문광장이 조선 왕조 당시 중앙 관청이 밀집해 있던 장소인 만큼 이 일대에는 사헌부(풍속을 관리하고 관리의 비행을 조사해 책임을 규탄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 터와 우물·담장 등이 파묻혀 있었다. 이들은 현재 발굴 이후 일부 복원돼 시민들에게 전시되고 있다. 이외에도 서울시는 △삼군부(군무를 통할하던 관아) 터 △병조(군사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 터 △공조(산림·수공업 등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 터와 물길 등을 재현해 광장이 가진 역사성을 강화했다.

광화문광장 설계를 총괄한 조용준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은 “새로운 광화문광장을 시민의 일상을 담고, 한국의 자연을 담고, 역사의 의미를 담는 장소로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자연’은 광장 서편에 심어진 한국 수종 중심의 수목을 통해, ‘역사의 의미’는 복원된 문화재를 통해 구현된다. ‘시민의 일상’은 우거진 수목과 우리 역사가 담긴 공간 속에서 자연스레 되살아난다. 조선 왕조 당시 사회 지배 계급인 양반의 전유물이었던 공간은 2022년 한국 사회에서 시민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광화문광장 육조마당 전경. 조선시대 광화문광장은 중앙 관청이 밀집한 ‘육조거리’였다. 이 일대에는 사헌부를 비롯해 삼군부·병조·공조 등이 있었다. 사진 제공=서울시


◇공론의 장과 시민의 쉼터 그 사이=광화문광장은 한국 역사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조선 왕조 때는 ‘육조거리’로, 일제강점기 때는 ‘광화문통(光化門通)’으로 불렸지만 시대를 불문하고 중앙 관청이 밀집된 국가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유지했다. 무엇보다도 2009년 세종대로 중심부에 광화문광장이 일부 복원된 뒤에는 시민들이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공론의 장으로서 기능했다.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까지 1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수차례 결집해 정권을 퇴진시킨 사건은 이미 21세기 한국 정치사에 각인돼 있는 역사 속 한 장면이다.

이후에도 수많은 집회와 시위가 열렸다. 2018년에는 여성주의를 내세운 ‘혜화역 시위’ 일부가 광화문광장에서 열렸으며 2019년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규탄하는 인파가 광장을 채웠다(같은 시기 대검찰청이 있는 서초동에서는 조 전 장관을 옹호하고 검찰을 비판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이 같이 광장이 집회의 장으로서 기능하는 것에 대해 일부는 민주주의 사회 내 시민들이 정치·사회적인 목소리를 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평했다. 하지만 광장이 가져야 할 시민의 쉼터로서의 역할이 제한되고 있다는 비판 또한 존재했다.



올해 새롭게 태어난 광장은 ‘공론의 장’보다는 ‘쉼터’에 무게를 뒀다. 서울시는 광장 재개장 이후 수차례 집회를 목적으로 한 광장 사용 신청을 ‘목적 부적합’을 이유로 반려했다. 공론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일부분 상실한 광장을 일각에서는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다른 한 편에는 광장이 시민들의 쉼터로서 기능하게 됐다며 반기는 시각이 상존한다.

광화문광장 중심부 너머로 경복궁이, 그 너머로 청와대가 보인다. 재개장 이전 광장은 집회 중심지로서 기능했다. 사진 제공=서울시


◇광장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광장은 그 자체로서는 불완전하다. 광화문광장 내 녹지 공간, 문화재, 세종대왕 동상, 이순신 장군 동상만으로 광화문광장은 완성되지 않는다. 광장을 완전하게 만드는 것은 주변 공간과 사람이다. 광화문광장 전면의 경복궁, 측면의 세종문화회관·정부서울청사 본관과 외교부 청사, 미국 대사관, 교보빌딩, KT광화문빌딩, 그리고 광장 위를 걷는 시민들 없이 광화문광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지상 100층에 육박하는 주변 마천루와 수많은 광고판 및 다인종 시민 집단, 관광객 무리 없이는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를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광장을 채우는 공간·사회적 구성에서 볼 때 광화문광장은 과거 흔적을 상당 부분 지니고 있으면서도 지극히 현대적이며, 한국적이면서도 국제적이다. 광화문은 과거 유산인 경복궁을 비롯해 근현대 권위주의 시대의 산물로 평가받는 정부청사를 접하고 있다. 현대적인 마천루도 주변에 즐비하다. 아울러 광장이 발을 붙이고 있는 한국 사회는 한국적이면서도 국제적인 사회다. 한국인은 한국만의 언어와 문화를 계승하면서도 국제 표준에 해당하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몸소 실천하고 있다. 그런 시민들이 광장을 채운다. 광화문광장은 한국과 세계 각각의 일부분을 담고 있다.

광화문광장은 아직 미완성 상태다. 광화문광장 재조성 사업의 일부인 광화문 월대 복원 및 해치상 이전은 내년 말께 완료될 예정이다. 이 같은 물리적인 측면을 제외하더라도 광장 내 집회를 둘러싼 논란이 보여주듯 공간이 어떻게 사용돼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못한 모습이다. 광장(廣場)은 우리말로 풀어 쓰면 ‘넓은 빈 터’가 된다. 아직 비어 있는 광화문광장의 미래가 어떤 모습이 될지는 오롯이 이 공간을 사용하고 채워나갈 시민들에게 달려 있다.

2022년 말 광화문광장 주변은 현대적인 마천루로 채워져 있다. 광장과 빌딩군 사이로는 불빛을 내뿜는 자동차 무리가 질주한다. 사진 제공=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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