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압사 참사와 관련해 경찰 지휘부의 부실 대응 정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드러나면서 이들에 대한 수사 요구가 날로 거세지고 있다. 이에 따라 참사 원인을 조사 중인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의 칼 끝이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 등 수뇌부로 향할 지 주목된다.
4일 경찰청에 따르면 윤희근 경찰청장은 참사 당일인 29일 주말을 맞아 본가가 있는 충북 제천을 찾았다. 월악산을 등산한 윤 청장은 인근 캠핑장에서 오후 11시 무렵 잠에 든 것으로 확인됐다. 이태원 참사가 오후 10시 15분에 발생한 만큼 윤 청장은 상황발생 이후 45분 동안 보고도 받지 못하고 사고 자체를 몰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잠이 든 윤 청장은 당일 오후 11시 32분께 경찰청 상황담당관에게 인명 사고 발생 문자메시지를 받았으나 확인하지 못했다. 20여분 뒤 다시 상황담당관이 윤 청장과 전화연결을 시도했지만 불발됐다. 윤 청장은 이튿날인 10월30일 오전 0시14분 상황담당관에게 비로소 상황보고를 받고 즉시 서울로 향했다. 서울경찰청장에게 전화로 총력 대응을 지시한 시간은 다시 5분이 흐른 같은 날 0시 19분이었다. 서울로 이동하는 시간 때문에 윤 청장이 경찰청 지휘부 회의를 주재한 것은 오전 2시 30분에야 가능했다. 핼러윈을 맞아 이태원 일대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 안전사고 우려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윤 청장의 이날 행적은 경찰의 총책임자로서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수장의 부재 속에 일선 현장의 지휘관이었던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의 당일 행적에 대한 의문점도 커지고 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늑장 보고를 한 이 전 서장은 ‘거짓보고’ ‘음주의혹’에 휩싸였다. 경찰청 특별감찰팀에 따르면 이 전 서장이 이태원파출소에 도착한 건 오후 11시 5분이었다. 이는 참사 초기 이 전 서장이 10시 20분에 도착했다는 용산서의 상황일지와 시간대가 다르다. 감찰팀은 이 전 서장이 상황보고를 허위로 작성했을 가능성도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함께 일각에서는 이 전 서장이 참사 당시 현장과 가까운 이태원파출소 옥상에서 위급한 상황을 모두 지켜봤음에도 늑장보고를 했다는 주장도 나오는 등 이 전 서장의 행적을 둘러싼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특수본은 감찰팀으로부터 이 전 서장과 류미진 당시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에 관한 감찰자료를 넘겨 받는 즉시 이들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특수본은 진상규명 과정에서 지휘부의 문제가 드러날 경우 서울경찰청장을 포함해 수뇌부까지 수대를 확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수본 관계자는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윤 청장을 포함한 경찰 지휘부도 수사대상이 되느냐는 질문에 "전제를 깔고 (수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모든 가능성을 두고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의 책임론에 대해서도 “그 부분도 당연히 수사범위에 포함돼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특수본은 당분간 지휘부 부실대응보다 참사 현장을 재구성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수본은 이날 12시 기준 목격자 및 부상자 67명과 인근 업소 관계자 14명, 용산경찰서 112 상황실과 현장 출동 경찰관 3명 등 85명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 경찰은 또 인근 폐쇄회로(CC)TV 141개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3D 시뮬레이션 분석을 통해 사고 원인 규명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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