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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로'에 갇혀 변화 거부…무전공 늘려 융복합 인재 양성 시급

[고등교육 혁신 지금이 골든타임]

<중> 현실 안주하는 대학…구조개혁 지지부진

충원난 없는 수도권 구조조정 미적

연구비·교수직 유지 위해 담 높여

'생존 기로' 지방대는 통폐합 활발

전공필수 학점 줄이고 복수 확대

학과·대학 간 '다리' 구축해놔야





“학과 이기주의 때문에 융합적 역량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지 못한다면 그건 죄악입니다. 교육이 아니라 재배나 사육과 같습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서 융복합 역량을 갖춘 인재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다. 인재 양성 최선봉에 있는 대학들이 학과 간 경계를 무너뜨리는 등 파괴적 혁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정작 학과·전공 이기주의라는 벽에 가로막혀 좀처럼 변화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융복합 인재 양성을 위해 학과 간, 나아가 대학 사이에 다리를 놓고 미래 수요를 반영해 강도 높고 선제적인 구조 조정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학들은 급변하는 사회 환경과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학과 칸막이를 허물고 융합 전공 등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대학 간 융합 전공 운영이나 공동 교육과정 개설, 다학기제, 무전공 등 미래형 학사 제도까지 언급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가장 큰 걸림돌은 전공·학과 이기주의다.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교수는 “국내 대학은 각각의 학과가 담을 쌓는 ‘사일로(silo·부서 이기주의)’를 지키려는 현상이 심해 융복합 교육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울대가 최근 발표한 ‘중장기 발전 계획 보고서’에서 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은 것도 바로 ‘이기주의’였다. 대학 내 보이지 않는 칸막이가 학교 발전을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는 보고서에서 “오래전부터 단과대학(원), 학과(부), 전공, 개인의 이기주의와 기득권에 매몰돼왔다”며 “개별 조직의 이해관계가 학교 전체의 발전을 위한 미래지향적 의사 결정을 압도하고 있고 새로운 교육과 연구 과정을 개척하고자 하는 노력은 타 조직의 견제와 반대에 부딪혀 갈등과 반목으로 비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학과 이기주의는 혁신을 위한 학제 개편 과정에서 수반되는 구조 조정도 가로막고 있다. 중복되거나 학문적 수요가 이미 사라진 학과도 많지만 학과 교수들을 중심으로 자리와 연구비를 지키려 한다. 혁신을 위해 과감한 구조 조정도 불사하는 세계 유수의 대학들과 다른 모습이다. 애리조나주립대는 2002년부터 10년간 69개 학과를 통폐합해 융합 전공을 만들었다. 배상훈 교수는 “국내 주요 대학의 학과가 미국 주요 대학보다 평균적으로 수십 개 더 많다”며 “전공별 칸막이를 치며 분화해온 결과 잡화점식 구조가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특히 혁신을 선도해야 할 소위 주요 대학들이 지방대와 달리 충원난을 겪지 않아 구조 조정에 미온적이다. 지방대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구조 조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하지만 주요 대학들은 교수 등 학내 저항까지 감수해가며 구조 조정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는 한 교육 환경 변화에 선제 대응도 못 하고 있다.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일반대학 학과(학부) 통폐합 현황’을 보면 최근 3년간(2019~2021년) 비수도권 통폐합 건수는 전체의 77%(539건)에 달했으나 수도권 대학은 161건에 불과했다. 김병주 영남대 교육학과 교수는 “구조 조정을 할 경우 기존 학과 정원을 내놓아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아직까지 배가 고프지 않은 수도권 주요대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왜 추진하는 것이냐’는 반발에 부딪힌다”고 지적했다.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학과는 물론 대학 간 통합까지 시도하며 다양한 활로를 찾고 있는 대학들도 있다. 한국외대는 올해 초 학제 개편을 추진하면서 학교 구성원들과 갈등을 겪었다. 글로벌캠퍼스 통번역대학·국제지역대학 8개 학과를 서울캠퍼스 유사 학과와 통폐합해 확보한 정원으로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첨단 분야를 교육하는 신규 학과 개설을 논의 중이다. 영남대는 올해 개교 이후 최대 규모의 학제 개편을 단행해 기존 16개 단과대학 체제에서 15개 단과대학으로 재편하고 소프트웨어융합대학과 글로벌인재대학을 신설했다.

구조 조정이 어렵다면 학사 제도를 유연하게 개편하는 것도 방법이다. 필수로 들어야 하는 전공 학점을 줄여 복수전공·부전공을 확대하거나 무전공을 늘리고 서로 다른 전공의 유사 강의를 합쳐 하나의 강의로 만든 뒤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수강할 수 있도록 하는 ‘크로스리스팅(cross-listing)’을 활성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배 교수는 “전공을 아예 폐지하겠다고 하면서 많은 문제가 생기는데 각 전공별 필수 학점을 줄여 다른 전공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도록 해 학문 간 크로스오버가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차 교수 역시 “학과 간 이기주의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인센티브를 마련하고 각 전공별 필수과목도 줄이는 방법으로 경계를 더 없애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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