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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가의 별의별 '글꼴' 영화에도 나왔다는데…[똑똑!스마슈머]

한글 서체 개발로 접점 넓히는 유통기업들

안성탕면·메로나체 등 만들어 무료로 배포

개성있는 폰트 개발 배민, 영화에서도 활용

서체 명엔 직원 제비뽑기로 자녀 이름 반영

세븐일레븐 ‘청산리 전투 100주년’ 기념해

1년 고증 거쳐 ‘김좌진 장군 서체’ 만들기도

무료 배포지만, 기업 이미지·친숙도 ↑ 효과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사진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지난 9월 개봉해 관객 115만 명을 동원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국내 최초의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답게 친숙한 멜로디로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며 인기를 끌었다. 생(生)의 시간이 정해진 주부 세연(염정아)이 남편 진봉(류승룡)에게 ‘내 생일 선물로 첫사랑을 찾아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하며 시작되는 과거로의 여행 속에 신중현의 ‘미인’, 이문세의 ‘조조할인’, ‘알 수 없는 인생’, ‘솔로 예찬’, ‘애수’, 이승철의 ‘잠도 오지 않는 밤에’,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등 많은 세대의 공감을 자아내는 명곡을 녹였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이 흘러나오는데, 여운 가득한 결말에 배경 음악의 가사가 더해지며 대다수 관객은 상영관에 불이 들어오고 나서야 자리를 뜨게 된다.

영화 출연한 배민, 아니 배민체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컷(위)과 영화에 사용된 배민연성체로 쓴 ‘인생은 아름다워’/롯데엔터테인먼트, 우아한형제들


이때 끝까지 앉아 엔딩 크레딧을 본 사람이라면 낯익지만, 영화와는 거리 먼듯한 이름을 보게 된다. 바로 ‘배달의 민족’이다. 영화에는 배달음식 장면이나 라이더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고, 이 회사가 제작에 참여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배민은 왜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을까. 그 이유는 러닝타임 상 정 반대편, 영화 도입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잘못 탄 버스를 바꿔 타기 위해 길을 건너던 세연이 진봉과의 추억 깃든 서울극장을 발견한다. 수화기 너머에선 “너 지금 어디냐”며 닦달하는 까칠한 진봉의 외침이 터져 나오지만, 세연은 마치 뭐에 홀린 듯 말한다. “여보, 내가 지금 어디 있는 줄 알아? 서울극장~ 여기가 이렇게 변했네.” 그 순간 화면은 풋풋한 사랑에 설렜던 그 시절로 바뀌고 이문세의 ‘조조할인’ 노래가 시작된다. 경쾌하게 펼쳐지던 세연과 진봉의 20대는 4분 여의 음악이 끝나면서 역시나 아련하게 사라지고, 그때 영화 제목인 ‘인생은 아름다워’가 등장하는데, 여기 사용된 글자체가 바로 ‘배민 연성체’다.

서체 개발에 진심인 배달 플랫폼?


배달 플랫폼 회사에서 ‘웬 폰트’라고 하는 이는 많지 않을 듯하다. 그만큼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은 10년 가까이 자체 서체를 개발, 무료 보급하며 자사 마케팅에 활용해 왔다.

우아한형제들 더큰집(서울 잠실 롯데타워 사무실)에는 다양한 배달의민족 글꼴을 활용해 제작된 간판이 걸려있다./사진 제공=우아한형제들


우아한 형제들은 한글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자 2012년부터 한글날을 즈음해 길거리 간판을 표현한 서체를 공개해 왔다. 옛날 간판 글자(2012년 한나체, 2014년 주아체)부터 아크릴판에 시트지를 잘라 만든 길거리 글자(2015년 도현체), 가판대의 붓글씨(2016년 연성체), 매직으로 쓴 화장실 안내판 글씨(2017년 기랑해랑체) 등 거리의 글자들을 서체로 재탄생 시켜왔다. 영화에 나온 배민 연성체는 2016년 선보인 폰트로 제주도 호박엿 가판대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어수룩하지만 또박또박 한 글자씩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붓글씨체로, 울뚝불뚝 리듬감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 외에도 2019년 만든 배민 을지로체는 무명의 간판 글씨 장인이 그린 을지로 일대 가게들의 간판을 바탕으로 만들었으며 2020년과 2021년 각각 ‘10년후체’, ‘오래오래체’로 진화했다.

배민을지로체/사진 제공=우아한형제들


배민은 올해 새로운 ‘한글 그림 글자’를 출시했다. 서체 이름도 글자의 ‘글’과 그림의 ‘림’을 따서 지은 ‘글림체’다. 그림과 글자가 합쳐진 그림 글자 형태로 자음 모음 파일을 내려받아 원하는 방식으로 조합해 글자를 만들 수 있다. 글림체의 자음 모음 하나하나는 배민 디자이너들이 손으로 직접 그렸다. 여러 디자이너가 함께 작업하면서 다양한 스타일의 글림체가 만들어졌는데, △기본형 △폭신형 △납작형 △길쭉형 △와일드형 등 다양한 형태를 만나볼 수 있다. 지금까지는 타자로 칠 수 있는 형태의 폰트를 공개했으나 이번 글림체의 경우 폰트화 대신 이미지 파일로 제공한다. PPT나 그림판과 같은 빈 화면에 글림체 자음과 모음을 하나씩 끌어다가 글자를 만들 수 있다.

우아한형제들이 올해 선보인 새로운 글꼴인 배민 글림체/사진 제공=우아한형제들


대부분 무료 배포…서체 통한 ‘연상’ 마케팅 노려


여기서 궁금한 것은, 배달하는 회사가 왜 이리 서체에 진심인가 하는 부분이다. 사실 이들 서체는 모두 무료 배포이기 때문에 배민 입장에서 ‘돈 되는 사업’은 아니다. 돈은 안되지만, 개발에 드는 비용을 굳이 따지면 평균 수천 만 원이다. (단, 배민을 비롯해 디자인팀을 보유한 기업들은 서체 개발을 자체적으로 진행한다. 그렇지 않은 기업들은 외부 전문 업체에 이를 맡기기 때문에 비용이 더 들어간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배민은 서체를 무료로 배포해 일반인뿐만 아니라 회사, 단체, 관공서에서 제약 없이 쓰도록 하고 있다”며 “그 결과 요즘 생활 속에서 배민 서체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배민을 비롯해 서체 개발 및 무료 배포에 나서는 업계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배달의민족은 자체 개발한 서체를 입힌 굿즈를 만들어 배민문방구에서 판매한다./사진 제공=우아한형제들


무료 서체로 쓴 여러 문구를 보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자사를 떠올리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배민은 서체의 무료 배포 외에도 ‘B급 정서’를 접목한 굿즈에 서체를 입혀 배민문방구에서 판매해 젊은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배달의민족의 첫 서체인 ‘한나체’의 이름은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의 첫째 딸 이름에서 따왔다./사진 제공=우아한형제들


배민 서체와 관련해 흥미로운 점은 서체 이름 상당수를 임직원 자녀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출시된 한나체는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대표의 첫째 딸 ‘한나’에서 따왔고, 주아체는 둘째 딸의 이름으로 지었다. 이후 개발한 서체들은 우아한형제들 전 직원 제비뽑기를 통해 자녀 이름을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증 통해 ‘없던 서체’ 개발·보급도


재미와 마케팅 이외에 사회·역사적 의미를 담아 글꼴을 개발하기도 한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지난 2020년 ‘청산리 전투 승전 100주년’을 맞아 ‘김좌진 장군 독립서체’를 국내 최초로 제작해 무료 배포했다.

세븐일레븐은 김좌진 장군의 붓글씨를 바탕으로 1년여에 걸친 고증 및 연구를 거쳐 2020년 ‘김좌진 장군 독립서체’를 개발했다./사진 제공=롯데지주


이 글꼴은 장군의 현존하는 한글 필적이 없었던 탓에 많은 연구와 시간, 노력을 바탕으로 개발을 진행해야 했다. 당시 세븐일레븐은 철저한 고증을 위해 사단법인 백야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와 업무협약을 맺고, 한자로 쓴 김좌진 장군의 친필 원고를 확보했다. 원고에 대해 충남역사문화원의 자문까지 얻어 구체적인 작성 시기와 작성자 확인 작업을 벌였고, 미리 확보한 장군의 한자 필체에서 가로획과 세로획의 시작 및 마무리 삐침, 획의 붙음과 떨어짐, 흘림, 굵기, 기세 등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병행해 필체에 대한 신뢰도를 더욱 높였다. 1년에 걸친 연구와 고증을 바탕으로 세븐일레븐은 서체 전문기업 산돌커뮤니케이션과 협력해 서체를 개발할 수 있었다. 한국조폐공사는 2020년 청산리 전투 승전 100주년 메달을 제작하면서 케이스 디자인에 이 서체를 사용했고, 우정사업본부에서도 기념우표 디자인에 활용했다. 세븐일레븐도 이 글꼴을 사용한 일부 상품을 출시한 바 있으며 지금까지도 원하는 직원들은 자신의 명함을 김좌진 장군 독립서체로 인쇄해 사용하고 있다.

빙그레가 2016년 배포한 ‘빙그레체’의 개발 과정에서 제작한 한글 글자본/사진 제공=빙그레


빙그레(005180)체·안성탕면체…친숙한 이름처럼 더 가까운 한글을


빙그레의 서체 개발도 유명하다. 이 회사는 2016년부터 한글 활성화를 위해 폰트를 무료로 제공해왔다. 회사 이름부터 한글인 빙그레는 창립 기념일도 한글날인 10월 9일이다. 이 같은 인연(?)으로 빙그레는 한글 글꼴 개발·보급에 앞장서 왔다. 그동안 선보인 서체로는 빙그레체, 빙그레체Ⅱ, 빙그레 따옴체, 메로나체, 싸만코체 등이 있으며 누적 다운로드 수만 100만 건이 넘는다. 폰트 프로젝트의 1호였던 ‘빙그레체’는 빙그레의 대표 제품인 바나나맛 우유의 브랜드 로고를 모티브로 했다. 당시 전문 업체의 한글 디자이너들이 다양한 시안을 만들었고, 이후 빙그레 임직원 및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전문가 자문단이 추가로 의견을 제시해 최종 시안을 선정하는 등 1년간 깐깐한 과정을 거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빙그레의 서체만 따로 소개하는 홈페이지에는 서체 개발 과정을 담은 갤러리가 있는데 빙그레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제작했던 두꺼운 책자가 눈길을 끈다.

농심이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윤디자인빌딩에서 진행중인 ‘파스타랑 안성탕면 한글잔치’ 팝업 전시회 전경/사진 제공=농심


이 밖에 농심(004370)이 최근 자사 안성탕면 로고의 특징을 반영해 만든 ‘안성탕면체’와 잉크 사용량을 줄이는 ‘ECO체’를 선보이고 이들 폰트를 사용해 나만의 라면 문구를 만들어 보는 ‘안성맞춤 백일장’ 이벤트를 진행해 화제를 모았다. 오는 27일까지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윤디자인빌딩에서 ‘파스타랑 안성탕면 한글잔치’라는 주제로 팝업 전시회를 여는데, 안성탕면체를 활용한 디자인 공모전 수상작을 전시하는 한편, 이 폰트를 이용해 원하는 글자를 프린트를 할 수 있는 체험존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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