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유행한 지난 2년간 움츠러들었던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이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전환으로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외부 활동이 늘어나면서 수요가 급증해 시장 규모가 역대 최대 수준으로 팽창했다.
23일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비만치료제 매출은 483억 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27.3% 늘었다. 직전 분기 463억 원에 이어 2개 분기 연속 분기 매출 신기록을 세우며 역대급 호황을 누리고 있다. 올 들어 3분기까지 누계 매출은 1302억 원으로 전년보다 20.0% 상승했다.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거치는 동안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은 정체현상을 나타냈다. 2018년 발매와 동시에 시장 선두자리를 꿰찬 '삭센다'의 신제품 효과가 사라진 데다 고강도 거리두기 정책으로 외부활동이 줄면서 성장세가 한풀 꺾였다. 하지만 올해 4월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전히 해제되고 외부 활동이 다시 활발해지자 비만치료제 수요가 급증한 것으로 분석된다. 팬데믹 장기화로 운동량이 극도로 줄고 집에서 식사량이 늘면서 이른바 '확찐자'(확 살이 찐 사람)가 늘어난 점도 비만치료제 시장을 키우는 데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비만율은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33.8%에서 2020년 38.3%로 1년 새 4.5%포인트 늘었다.
노보노디스크제약의 GLP-1 유사체 '삭센다'가 독주 체제를 굳히며 시장 성장을 견인했다. 올 3분기 삭센다 매출은 166억 원으로 전년동기대비 68.4%나 뛰었다. 전분기 매출 154억 원을 가뿐히 뛰어넘으며 제2의 전성기를 구사하는 모습이다. 삭센다는 GLP-1 유사체로 허가 받은 세계 최초의 비만치료제다. 체내 혈당조절에 관여하는 GLP-1 효소와 동일한 기전으로 작용해 식욕억제와 체중 감소를 유도한다. 삭센다와 동일한 리라글루타이드 성분으로 용법용량만 다른 '빅토자'는 제2형 당뇨병 환자의 혈당강하 용도로 허가받아 처방되고 있다. 주사제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폭발적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데는 다른 비만치료제보다 안전하다는 인식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삭센다는 발매 직후 '강남 다이어트 주사'로 입소문을 타며 품귀 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최근에는 비대면 진료가 한시 허용된 틈을 타 일부 플랫폼이 SNS 등을 통해 전문의약품인 '삭센다' 처방을 유도한다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2019년 말 발매된 '큐시미아'는 3분기 매출 82억 원으로 전년동기보다 2위에 올랐다. 전년동기보다 17.2% 오르며 자체 최고 매출을 찍었지만 삭센다의 성장세를 따라잡지 못해 매출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큐시미아는 알보젠코리아가 지난 2017년 미국 비버스로부터 국내 판권을 확보한 '펜터민'과 '토피라메이트' 성분의 복합제다. 국내에서는 종근당(185750)이 판매를 맡고 있다. 큐시미아의 판권을 보유한 알보젠코리아가 일찌감치 '푸링'·'푸리민' 등 비만 치료제를 판매하며 탄탄한 영업망을 구축한 데다 영업력이 뛰어난 종근당과 공동판매 계약을 체결한 점이 큐시미아의 흥행 비결로 꼽힌다. 경구제인 데다 기존 비만치료제에 비해 향정신성 약물 성분 함량이 적고 장기 처방이 가능하다는 점도 차별화 요소로 거론된다.
3분기 기준 '삭센다'와 '큐시미아' 2개 품목이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1.3%에 달했다.
유례없는 시장 호황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제품들은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100여 개 품목이 각축을 벌이는 가운데 '펜디멘'(한국프라임제약), '디에타민'(대웅제약(069620)), '휴터민'(휴온스(243070)) 3개 제품 정도만 겨우 분기 매출 10억원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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