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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빚은 제주·사람이 만든 예술…한데 어울려 작품이 되다

■제3회 제주비엔날레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

미술관·삼성혈·가파도 등 6곳서

2월21일까지…16國 165점 선봬

제주의 환경·예술 역할 환상 조합

최소한의 예술이 내는 최대의 효과

전염병·기후 위기 속 '공존' 모색

제주 삼성혈에 설치된 신예선의 '움직이는 정원' /사진제공=제주비엔날레




#가느다란 명주실이 나무 사이를 가로지르며 고목을 감쌌다. 제주도의 고씨·양씨·부씨 시조가 솟아났다는 3개의 구멍 삼성혈(사적 제134호)을 커다란 고치로 만들어버릴 듯한 태세다. 500년 이상 그 자리를 지켜온 나무들이 잠시 스쳐 가는 실로 인해 새롭게 보인다. 빛과 바람이 드나들고, 희미한 벽과 일시적 공간감이지만 엄연한 존재감ㅇ으을을 드러내는 신예선 작가의 ‘움직이는 정원’이다.

가파도 폐가에 그려진 아그네스 갈리오토의 프레스코 벽화 ‘초록 동굴’ /사진제공=제주비엔날레


#서양의 전통 벽화 프레스코를 다루는 이탈리아 작가 아그네스 갈리오토는 제주 본섬과 마라도 사이의 가파도에서 발견한 폐가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이 떠나 곳곳에 버려진 집이 휑뎅그렁한 곳에서 작가는 “화산 폭발 후 먼지에 묻혀 있다가 후세에 발견된 폼페이의 집처럼, 대기 현상에 지배된 후 먼 미래의 인간에게 발견된 장소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가파도 AiR) 작가로 초대된 그는 6개월간 섬을 연구했고 그 결과를 5개 방의 벽화로 그려 산 자와 죽은 자의 이야기가 공존하는 상상의 동굴로 만들었다.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을 주제로 내년 2월12일까지 열리는 제3회 제주비엔날레의 주제관인 제주도립미술관 전경. /조상인기자


제3회 제주비엔날레가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을 주제로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현대미술관, 삼성혈,가파도AiR,미술관옆집 제주, 제주국제평화센터 등 6곳에서 막을 올렸다. 내년 2월 12일까지 열리는 행사에 16개국 55명(팀)의 작가가 165점의 대표작을 선보였다. 천혜의 자연 경관을 가진 제주에 인간이 만든 예술이 무슨 필요가 있겠냐는 ‘비엔날레 무용론’은 2017년 제1회 제주비엔날레가 출범할 때부터 따라다녔다. 하지만 자연과 생명, 인간과의 조화를 다룬 이번 전시는 최소한의 예술이 최대의 효과를 내며 제주의 강점과 예술의 역할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는 평가를 받기 충분했다. 지난 3월 임명돼 짧은 준비기간 국내외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전시를 준비한 박남희 예술감독은 “전염병과 기후 위기 등의 상황 속에서 전 지구적 공생의 방향은 자연의 순환성과 생동성의 회복”이라며 “공존과 조화를 다룬 제주비엔날레 작품들을 통해 삶의 태도, 예술적 실천도 성찰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주도립미술관 1층 중정을 특수필름으로 감싸 무지개 효과를 낸 김수자 '호흡' /조상인기자


주제관인 제주도립미술관에 들어서면 세계적 작가 김수자의 ‘호흡’이 방문객 모두를 끌어안는다. 중정 유리창에 특수 필름을 붙였을 뿐인데, 사방에 무지개가 드리웠다. 걸을때마다 정원으로 쏟아지는 빛, 식물의 움직임과 그림자가 신비로운 형상을 만들어 낸다.

2층 전시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노란 꽃 송이 수백 개가 떨어져 있다. 아직 생명의 촉촉함이 남아있는 듯한 꽃잎의 노란색부터 시들어 뭉개진 검은 빛까지 사실적이지만, 실제는 폴리염화비닐을 재활용해 만든 것이다. 설치작업 ‘접목(Graft)’의 작가 듀오 알로라&칼자디아는 “지난 몇 년 동안 카리브해에서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발생한 허리케인으로 수백만 그루의 나무가 파괴됐다. 우리 눈 앞에 떨어진 카리브해의 꽃들은 나무에서 떨어진 유령들”이라고 짚었다. 인간이 어지럽힌 자연환경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업에는 매 전시마다 1만7500개의 가짜꽃이 사용된다.



작가듀오 알로라&칼자디아의 '접목(Graft)'은 진짜 꽃처럼 보이지만 비닐을 재활용한 작업이다. /조상인기자


작가듀오 알로라&칼자디아의 '접목(Graft)'은 진짜 꽃처럼 보이지만 비닐을 재활용한 작업이다. /조상인기자


작가듀오 알로라&칼자디아의 '접목(Graft)'은 진짜 꽃처럼 보이지만 비닐을 재활용한 작업이다. /조상인기자


한국계 2.5세인 캐나다 작가 자디에 사는 어린 시절에 들은 바리데기 설화를 바탕으로 변신을 거듭하는 여우와 물고기, 자아 성찰적 소라 등을 조각·설치·소리·그림으로 구현했다. 마야인의 유물이지만 멕시코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미국 피바디미술관에 남아있는 유물들을 그린 갈라 포라스 킴의 작품은 유물이든 자연이든 본래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되묻는다.

비엔날레 지도를 따라 다니면 제주를 한바퀴 돌게 된다.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의 제주현대미술관 바로 옆에 위치한 이유진 작가의 레지던시 공간 ‘미술관옆집 제주’에서는 태국 작가 리크릿 티라바닛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퇴비를 만들고 막걸리를 빚어 나눠마시는 그의 작업은 유기물·공기·물 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것들로, 사람들간의 공동체의식 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공생·공존의식을 상기시킨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에 만나는 김기대의 ‘바실리카’는 비닐하우스 제작 방식으로 중세 교회 건축인 바실리카 형태를 만들어 자연에 대한 경배와 지배를 이야기 한다. 최소 1박2일의 일정으로 전시를 돌아본다면 좀 더 여유롭게 자연과 예술과 제주의 참맛을 즐길 수 있을 듯하다.

‘검은 퇴비에 굴복하라’는 리크릿 티라바닛의 작업은 자연과의 공생, 공동체의식의 회복을 주장한다. /조상인기자


자연에 대한 경배와 지배를 중세 성당 건축인 바실리카와 비닐하우스를 접못해 보여준 김기대의 ‘바실리카’는 제주도 한경면 저지리 제주현대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에 만날 수 있다. /조상인기자


전시는 탁월했으나 숙제가 남았다. 여타 국제비엔날레와 달리 제주비엔날레는 독립적 조직위원회 없이 제주도립미술관의 관리를 받는다. 미술관 인력과 예산도 부족한 상황이라 기형적일 수밖에 없으며 매번 잡음을 냈다. 구조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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