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최근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두고 벌어진 서울교통공사(이하 공사)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갈등에 대해 각각 ‘엘리베이터 설치’와 ‘시위 중단’이라는 조정안을 내놓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휴전’ 제안을 전장연 측이 받아들여 1년 가까이 이어진 시위가 잠정 중단된 상황에서 나온 법원 중재안에 양측이 모두 동의할지 관심이 쏠린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27단독 김춘수 판사는 19일 공사가 전장연과 박경석 전장연 대표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사건에서 이 같은 내용의 ‘조정을 갈음하는 결정(강제조정)’을 내렸다.
법원은 “공사는 현재까지 발생한 장애인 사망 사고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서울시 지하철 역사 275개 중 엘리베이터 동선 미확보 19개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2024년까지 설치하고 전장연은 열차 운행 지연 시위를 중단한다”고 제안했다. 여기에 더해 전장연이 열차 운행을 5분 초과해 지연시키는 시위를 할 경우 1회당 500만 원을 공사에 지급하도록 했다.
민사소송에서 조정은 판결을 내리지 않고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다. 화해 조건에 양측이 모두 동의할 때는 임의조정, 재판부가 양측의 화해 조건을 결정할 때는 강제조정이라 부른다. 강제조정에 대해 양측 당사자가 2주 안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며 이 기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강제조정 내용이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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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공사는 전장연이 지난해 1월 22일부터 11월 12일까지 일곱 차례 벌인 지하철 시위가 불법행위라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이에 전장연은 서울시와 공사 측이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최근까지 시위를 이어갔다. 법원은 올 9월 28일 사건을 조정에 회부해 두 차례 조정 기일을 거쳐 강제조정안을 내놓았다.
전장연과 공사가 아직 이의 제기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가운데 법원이 전장연에 배상금 지급 조건을 명시해 이행을 강제한 것과 달리 공사는 설치 약속을 어기더라도 이를 강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조정에 이르기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서울시가 열차 지연 시위가 계속될 경우 수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내부 방침을 세운 만큼 전장연 입장에서는 조정이 결렬될 경우 상황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어 고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장연은 지난해 12월부터 장애인 이동권을 요구하며 서울 지하철역에서 출발을 지연하는 방법으로 출근길 게릴라 시위를 벌여왔다. 오 시장은 20일 페이스북에 ‘전장연 지하철 탑승 시위, 휴전을 제안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오 시장은 “전장연이 지하철 탑승 시위를 지속한다면 더 이상 관용하기 어렵다”며 “국회 예산안 처리 시점까지 시위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전장연이 오 시장의 휴전 제안을 전격 수용하면서 출근길 지하철 시위는 일시 중단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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