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부동산 시장을 짓눌렀던 고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내년에도 전국 집값이 하락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호황기 초입 서울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된 가격 상승이 전국으로 퍼져나갔던 것처럼 이번 침체기에도 지역별로 시간 차를 두고 하락이 이어지다가 2024년 상반기 서울을 시작으로 순서대로 반등하는 ‘키 맞추기’ 장세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됐다.
25일 서울경제가 건설주택포럼·건설주택정책연구원과 함께 부동산 전문가 1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년 상반기 주택 시장 전망’ 설문 조사에서 지방 주택의 매매 가격이 5% 이상 하락할 것으로 전망한 전문가는 62.7%에 달했다. 이는 내년 상반기 수도권과 서울에서 집값이 5% 이상 빠질 것이라고 응답한 비중인 47.3%와 36.4%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이번 설문 조사에서 서울과 지방을 가릴 것 없이 5% 이상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한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열려 있으며 가격 하락에 영향을 주는 경기 침체, 고용 한파, 굉장히 낮은 수준의 소유자 구매 심리를 고려할 때 집값이 단기간에 회복되기는 어렵다”며 “올해 역대 최저 수준의 거래량을 기록했지만 내년에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시장 침체기에도 지역별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서울보다는 지방이, 또 서울에서는 중심보다 외곽에서 가격이 더 빠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응답자의 59.0%가 내년 상반기 서울에서 가장 많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한 지역으로 상대적으로 외곽으로 분류되는 ‘노원·도봉·강북’을 꼽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 다음으로는 대규모 신축 단지가 많아 ‘급급매 거래’가 종종 나오는 ‘송파·강동(14.0%)’을 비롯해 ‘마포·용산·성동(13.0%)’ 등의 하락률이 높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대해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내년 서울·수도권 매매 및 전세 가격은 10% 이상 떨어질 것”이라며 “노·도·강 지역과 강서·은평 등 서울 외곽 지역이 단기간 급등한 만큼 많이 떨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올해 하반기 서울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하락 신호탄을 터뜨린 만큼 집값이 반등하는 시점 역시 서울이 상대적으로 빠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이번 설문 조사에서 서울 집값이 상승 전환할 시점에 대해 가장 많은 26.4%가 ‘2024년 상반기’를 꼽았다. 반면 수도권과 지방에서는 가장 많은 응답이 ‘2024년 하반기(수도권 32.1%, 지방 35.2%)’에 몰려 서울이 먼저 반등할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지방의 상승 전환 시점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19.4%는 ‘2026년 이후’로 답변해 같은 시기를 선택한 비중이 서울(12.0%), 수도권(13.2%)에 비해 월등하게 높았다. 임병철 부동산114 리서치센터 팀장은 “상승기 때와 동일하게 하락할 때도 ‘키 맞추기’ 장세가 펼쳐질 것”이라며 “서울이 빠지면 수도권, 그리고 이어 지방 집값이 빠진다”고 말했다. 서울에서는 강남·서초구, 수도권에서는 과천·성남·하남·수원, 지방에서는 세종, 부산, 대구, 천안·아산 등이 하락기가 끝난 후 상승을 주도할 지역으로 꼽혔다.
다만 계속해서 오르고 있는 금리가 안정되면 시장의 패닉이 가라앉고 집값도 보합 또는 상승할 수 있다는 의견도 일부 나왔다. 이번 설문 조사에서 내년 상반기 서울 집값이 보합 또는 상승할 것이라고 선택한 전문가 비중은 각각 6.4%와 2.7%였는데 하락을 점친 비중(90.9%)을 고려하면 소수 의견에 해당한다. 보합·상승을 선택한 이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금리 안정’과 ‘주택 공급량의 절대적 부족’을 꼽았다. 윤주선 건설주택정책연구원장은 “내년 상반기 집값은 더 떨어지기 어려워 보합을 유지할 것”이라며 “금리 인상이 멈추면 불확실성이 사라지는 효과가 있고 정비사업 등 부동산 규제 완화에 나선 정부 정책의 효과, 2024년 총선을 앞둔 경기 부양책 등이 그 이유”라고 답했다.
한편 전세 시장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경우 ‘5% 이상 하락할 것’이라는 의견이 37.3%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3~5% 하락(30.0%)’ ‘1~3% 하락(21.8%)’ 순이었다. 전문가들이 전세 시장 약세를 진단한 가장 큰 이유로는 ‘금리인상으로 전세를 기피할 것’이라는 응답이 87.8%에 달해 치솟은 전세담보대출 금리에 반전세·월세 매물이 인기가 높은 상황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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