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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묘수'를 빙자한 금융권의 모럴해저드

경제부 조지원 기자





꽃놀이를 나온 사람들에게 술을 팔려고 두 사람이 나섰다. 술을 짊어지고 가는 길에 목이 마른 A는 B에게 1000원을 주고 술 한 잔 사 마셨다. 그걸 본 B도 목이 말라 A에게 1000원을 주고 술을 샀다. 꽃밭으로 가는 내내 서로 술을 사고팔면서 마신 둘은 거나하게 취했으나 주머니에 남은 것은 단돈 1000원뿐이었다. 자전 거래로 버블을 일으킨 일본 경제를 비판하면서 나온 말이 꽃놀이할 때 마시는 술, ‘하나미자케(花見酒)’ 경제다.

사례는 조금 다르지만 최근 발행 직전에 무산된 은행 간 은행채 거래(사모 은행채)를 보면 하나미자케 일화가 떠오른다. 일반적으로 은행은 예금으로 자금을 조달하나 은행채 발행도 활용한다. 이번에 논란이 된 것은 은행이 발행할 은행채를 다른 은행이 인수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은행끼리 예금을 서로 맡기고 자금을 조달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종의 ‘품앗이’다. 이렇게 발행한 은행채를 한국은행에 담보 증권으로 맡기면 실물거래를 수반하지 않고도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를 충족하거나 유동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셈이다.



자금 시장 경색 속 당국이 예금 경쟁 자제마저 요구한 만큼 은행 입장에서는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고 자금을 조달할 ‘묘수’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시도조차 안 했던 방식을 쓸 만큼 은행의 자금 조달이 시급했는지는 의문이다. 올해 예금은행 정기예금은 지난해 말 대비 186조 원 늘며 역대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한국은행의 유동성 지원은 받지 않으면서 사모 은행채로 자금을 조달하는 건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다. 또 이례적인 자금 조달 방식에 해외에서 문제가 생긴 것으로 오인할 소지도 충분하다.

이러한 ‘묘수’와 ‘꼼수’의 경계를 판단해야 할 당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금융시장 전반에 도덕적 해이는 만연해 있다. 과거 10년간 저금리를 누리며 막대한 이득을 챙긴 증권사들은 상황이 바뀌자 정부와 한은의 지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금융시장 간 연계로 작은 불씨라도 시장 전반을 흔들 수 있음을 이용하는 것이다. 당국과 한은은 ‘묘수’와 ‘꼼수’ ‘취약 부문 금융 지원’과 ‘도덕적 해이’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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