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민생 입법으로 정권 교체 첫해 국정 주도권을 잡겠다는 여야의 야심은 용두사미로 끝났다. 국민의힘은 핵심 10개 법안을 모두 연내 처리하겠다고 장담했지만 통과된 법안은 4개에 불과했다. 더불어민주당의 7대 입법 중 해결한 과제는 단 한 개뿐으로 “의석수가 무색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역대급으로 늦었던 예산안 협상 과정에서 정국이 경색되면서 상임위원회의 법안 심의도 뒷전으로 밀려났다.
28일 김진표 국회의장은 올해 마지막 본회의를 열고 비쟁점 법안들을 처리했다. 올해 정기국회 회기는 9월 초부터 이달 9일까지였지만 예산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12월 임시국회가 소집됐다. 넉 달에 걸친 마라톤 국회가 열린 셈이지만 여야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국민의힘은 9월 정기국회를 시작하며 ‘약자·민생·미래’를 3대 축으로 한 100대 입법 과제를 꼽고 그중 10대 법안을 최우선으로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10대 법안 중 통과된 법안은 4개뿐이다. 이마저도 올 마지막 본회의에서 반도체특별법과 ‘재난관리자원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 가결되면서 가까스로 4개를 채웠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법안들도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의 공약인 ‘1·2기 신도시특별법’ ‘아동수당법’을 반드시 연내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들 법안은 여전히 소관 상임위를 공전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한 원내 관계자는 “신도시특별법은 국토교통부에서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결과를 보고 재논의할 것”이라며 “아동수당법은 내년 상반기 중 개정을 마치겠다”고 말했다. 비쟁점인 ‘보이스피싱 근절법’은 논의 우선순위에서 밀렸고 본회의에서 ‘스토킹방지법’이 처리됐지만 여당의 ‘스토킹범죄처벌법’은 포함되지 못했다.
통과 법안들에 대한 이해 당사자의 반응도 미지근하다. 절충안 모색 과정에서 원안보다 크게 후퇴한 까닭이다. 반도체특별법의 일부인 조세특례제한법은 대기업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이 여당안에서 크게 뒷걸음질 친 탓에 업계에서는 “반도체 경쟁력에 정치권이 찬물을 끼얹었다”는 불만이 나왔다. 여당은 세액공제율을 20%로 높이는 안을 제시했지만 정부·야당의 반대가 심해 8%에 만족해야 했다. 예산부수법안으로 함께 24일 본회의를 통과한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법 등 교육교부금 개혁도 3년 한시 운용으로 조건이 달렸고 예산도 절반으로 깎이며 ‘반쪽짜리’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169석 힘으로 독주를 벌인 민주당의 입법 성과는 더욱 부실하다. 민주당의 7대 과제 중 해결된 법안은 납품단가연동제가 유일하다. 노란봉투법은 여당의 버티기와 반대 여론에 속도전에 차질을 빚고 있고 양곡관리법은 본회의 직회부가 결정됐지만 ‘대통령 거부권’이라는 난관이 남아 있다. 이와 함께 △기초연금확대법 △가계부채대책 3법 등도 연내 처리가 좌절됐다.
9월 여야는 주요 법안을 쏟아내며 민생 의제 선점 경쟁을 벌이는 듯했지만 갈수록 정쟁에 매몰돼 시간만 흘려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례로 화물연대 파업 등 현안이 산적한 국토교통위원회는 11월 16일 민주당이 예산안을 단독 의결한 뒤 여야 합의의 소위원회 회의를 단 한 차례도 열지 않았다. 노란봉투법·양곡관리법 등 여야 입장이 양극단에 선 법안을 최우선 과제에 올린 점도 협상 의지를 꺾었다.
여야는 이태원 참사 관련 국정조사 합의 과정에서 약속한 ‘대선공통공약추진단’을 구성해 민생 법안의 돌파구를 찾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법안 논의 우선순위를 두고 신경전이 예고돼 원활한 논의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여당의 한 지도부 인사는 “워낙 이슈가 많아 추진단에 대한 논의는 아직 미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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