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피해 광주 고려인마을까지 온 우크라이나 피난민 가운데 국적 없는 고려인이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27일 광주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지난해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무국적 고려인 문안젤리카(30) 씨와 그 아들(3)이 오는 4월 만료되는 국내 체류 비자를 정부로부터 연장받지 못하고 있다.
문씨와 아들은 선조들이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등지에서 머물다 고본질(계절농사)을 위해 우크라이나로 갔으나 소련해체 후 무국적자가 된 3만여 명의 고려인동포 후손들이다. 이들 선조들은 소련이 해체돼 각국이 독립하자 출신지역으로 돌아가 국적을 발급받아야 하나 시기를 놓쳐 무국적자가 됐다.
문씨는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어린 아들과 함께 이웃 국가 폴란드로 피신했고, 광주 고려인마을과 우리 정부의 도움을 받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당시 정부는 여권은커녕 신분을 증명할 서류로 출생증명서가 유일했던 문씨 모자(母子)에게 여행증명서와 90일 단기 비자를 발급해줬다.
문씨는 현재 입국 후 6개월 단위로 연장해야 하는 난민 비자(G-1)를 받아 고려인 마을에 체류 중이다.
여행증명서는 난민 비자 갱신 근거자료로 필요한데 법적 효력이 1년 뿐이다. 문씨와 아들의 경우 발급 1년째인 오는 4월이면 만료된다.
고려인마을은 외교부, 법무부 등 관계 기관에 문씨 모자의 여행증명서 재발급을 요청했으나 '전례가 없어서 안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여행증명서가 없다면 문씨 모자는 난민 비자를 갱신하지 못해 절차적으로 한국을 떠나야 한다.
여권이 없는 문씨 모자는 추방당하더라도 출국 수속을 밟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광주 고려인마을에 안착한 무국적 우크라이나 피란민 가운데 문씨 모자와 처지가 비슷한 고려인 후손은 10여 명에 이른다.
이천영 광주 고려인마을교회 목사는 "전쟁 초기 우리 정부는 고려인 후손인 우크라이나 피란민에게 현지 정세 안정화 때까지 비자가 만료된 이후에도 인도적 특별체류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며 "1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그 약속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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