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을 겨냥한 특검법에 이어 ‘법왜곡죄’ 도입 법안까지 발의되자 법조·학계를 중심으로 걱정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이들 법안이 현실화될 경우 사정 기관은 물론 사법부의 정치 중립·독립성까지 크게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야당을 중심으로 한 법 개정 움직임이 자칫 ‘신권위주의(neo-authoritarianism)’로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18일 법조·정치계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14일 전체 회의에서 ‘조희대 대법원장 등에 의한 사법 남용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검법(조희대 특검법)’을 상정했다. 해당 법안에는 대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한 것과 관련해 조 대법원장의 사법권 남용, 대선 개입 등 혐의를 수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별검사 후보는 민주당·조국혁신당이 1명씩 추천한다. 수사 기간은 최장 140일(준비 기간 20일 포함)로, 1심은 공소 제기일부터 6개월 이내, 2·3심은 전심 판결 선고일로부터 각각 3개월 이내 반드시 판결을 선고하도록 규정했다. 지난 12일 발의된 조희대 특검법은 15일이라는 숙려기간을 채우지 못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반대 속에 민주당·조국혁신당 의원들이 찬성하면서 상정됐다.
여기에 이른바 법왜곡죄를 담은 형법 개정안도 연이어 발의됐다. 지난 2일에는 ‘재판·수사 중인 사건에 법관이나 검사가 고의적으로 법리를 왜곡하거나 사실을 조작해 정의 실현을 방해하는 경우 처벌한다’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민형배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같은 당 김용민 의원도 지난 13일 유사한 내용을 담은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해당 개정안에는 ‘법관, 검사, 사법경찰관이 △정당한 이유 없이 고발 등으로 이미 인지된 사건의 처리를 지연하거나 △특정인을 유리 또는 불리하게 만들 목적으로 사실 관계를 조작하는 행위 △조작되거나 잘못된 사실 관계에 법을 적용해 유죄 판결을 내리는 행위 △법관이 부당하게 법을 적용하는 행위 △범죄의 혐의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 경우에도 고의로 부실하게 기소하거나 불기소 처분하는 행위 등을 처벌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도 12일 법왜곡죄를 담은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사정 기관은 물론 사법부를 겨냥한 연이은 야권의 법 개정 움직임에 법조·학계에서는 ‘시행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수사·재판 등 처분에 있어 이미 항고, 수사심의위원회, 3심제 등까지 제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법왜곡죄 등 시행이 자칫 국내 법률 생태계에 혼란만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계 관계자는 “독일의 법왜곡죄는 나찌 시절 의도적으로 법을 왜곡해 처벌한 부분을 바로 잡기 위해 시행됐다”며 “현재는 오남용의 위험 때문에 해당 조항이 적용돼 처벌하는 사례가 많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정 기관이 수사나 처분에 있어 잘못된 판단을 했을 때를 위해 항고·재항고는 물론 수사심의위원회 등 제도가 있고, 검찰의 자의적 기소 처분에 대해서도 법원이 재판에 따라 통제하고 있다”며 “(법왜곡죄 시행으로) 재판부가 법리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향후 판단해야 할 때 자칫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수사 기관이 자의적 해석에 따라 기소하거나, 법원마저 잘못된 판단을 하는 등 정치 중립·독립성 자체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키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학계 관계자도 익명을 전제로 “법왜곡죄는 지금까지 인류가 피 흘려 쌓아온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근간조차 흔들 수 있다”며 “제왕적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삼권분립과 사법권의 독립이 정치 권력의 입맛에 따라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아시아, 남미 등에서 독재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신권위주의로 흐를 위험성도 경고했다. 이 관계자는 “투표로 권력을 얻은 정치 권력이 정치인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법왜곡이라고 판단하기 시작할 때, (이들 권력자는) 자기 마음대로 모든 것을 재단할 수 있다”며 “이 같은 경우 사법부를 손에 쥐고, 국민 지지를 이어가기 위해 정보까지 통제하는 신권위주의로 빠져들 위험성을 크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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