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찍고 나서, (이야기의 주인공인) 소희와 같은 처지에 있거나 같은 마음을 느끼지만 똑같은 선택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텐데 그 분들에게 고맙더라고요. 버티는 것에 대해서 말이죠. 이 영화가 버티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말을 꺼내는 순간, 배우 배두나의 목소리와 눈빛이 떨리기 시작했다. 감정을 누르고 말을 이어가려고 했으나 눈물을 참지 못했다. 8일 개봉하는 그의 주연 영화 ‘다음 소희’의 주인공과 같은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던 차였다. 그가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건, 작품이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음 소희’는 2016년 실화를 바탕으로 하며, 콜센터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성희롱, 감정노동, 부당한 대우 등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특성화고 학생 소희(김시은)의 이야기다. 배두나는 소희의 시신이 발견된 후 사망 원인을 조사하는 형사 유진을 연기한다. 유진은 경찰서에서, 학교에서, 교육청에서 번번이 책임지지 않으려는 어른들과 현실의 벽을 마주하면서 분노한다.
최근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수사를 하며 찾아간 교육청 장학사의 ‘적당히 하십시다’라는 대사가 잊히지 않는다”며 “감독은 어른들의 그 모습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죽은 아이를 탓하는 학교 교감에게 주먹도 날리는데, 촬영하면서 본인도 이성을 살짝 잃었다는 그는 “칸 영화제에서 상영될 때 그 장면에서 사람들이 환호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영화의 전개 특성상 김시은과 함께 연기하지는 못했지만, 배두나는 “영화를 처음 찍는 친구지만, 연기하는 것을 보고서 이 영화 좋다고 확신이 왔다”고 말했다.
배두나는 작품 선택의 폭이 매우 넓다. ‘도희야’ ‘브로커’ 같은 작품성 있는 작품부터 ‘괴물’ 같은 흥행작, 최근 촬영을 마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레벨 문’까지 넘나든다. ‘다음 소희’ 역시 500만, 600만 관객이 들 영화는 아니다”라고 직접 말한다. 그는 “여러 가지를 해 보려 한다. 크고 작은 작품을 오가는 게 도움이 된다”며 “다만 의도적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만 중시하거나 흥행이 보증된 큰 영화만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아이들 이야기, 이런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는 참여하려고 한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약하고 모르기 때문에 보호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우리 때보다는 나아졌으면 한다. 지금 아이들이 덜 아팠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배우 일이 너무 좋고, 촬영을 시작하며 세트로 들어가는 자기 자신이 멋있다고 말하는 배두나다. 그는 “20년 넘게 여기서 버티고 있다는 자체로 칭찬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게 배우의 매력은 뭘까. 배두나는 “굳이 내 입으로 하지 않아도, 캐릭터를 통해 하고 싶은 말과 사회적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쉬고 싶을 때 재충전하고 돌아와서 바로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게 재미있다”고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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