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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옥 칼럼]빅블러호에 올라탄 중국의 생존법


세계를 달구고 있는 챗GPT가 여당 전당대회 대표 선거의 화두로 등장했다. 감각과 감성을 투여받은 인공지능은 신라 시대 여왕의 고뇌하는 모습을 한 폭의 그림으로 표현했다. 중국에서는 영화를 보면서 화면 속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그야말로 시청각 융합 후각 경제가 유행이다. 이처럼 우리는 동시다발적 힘이 작용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생산자와 소비자, 제품과 서비스, 학문과 산업이 융합하면서 경계가 사라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의 한복판에 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도저한 생각의 근육을 만들고 벽을 허물지 못하는 한, 미래의 게임 체인저를 주도하는 것은 불가능해지고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기계의 진화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미국과 중국이 미래 공간을 차지하기 위한 사활적 기술 경쟁을 시작한 지는 오래 됐다. 이 경쟁은 시간과 결말도 모르는 채 지금도 진행 중이다. 사실 미·중 전략 경쟁에서 중국의 가장 취약한 부분은 자유로운 바깥 공기가 실험실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면서 생기는 융합 체력과 상상력의 빈곤에 있었다. 그런 중국도 대융합으로 번역되는 빅블러 시대에 올라탔다. 설날 직후 경제 체력을 회복한 중국 화웨이사는 올해 첫 시장설명회를 열고 ‘초융합 플러스’ 전략을 제시했다. 융합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 개혁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중국 교육부가 ‘더욱 융합, 더욱 스마트’라는 정책 기조를 발표한 이후, 대학마다 공고한 전공 칸막이를 없애고 융합학문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예컨대 베이징대학은 ‘선진 교차학문 연구소’를 만든 데 이어 다양한 융합연구센터 등도 속속 설치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미 제14차 5개년계획(2021~2025년)에서 산학연, 제조업과 서비스업, 온·오프라인 융합 소비, 디지털 경제와 실물경제 대융합을 국가 핵심과제로 설정한 바 있다.

중국 기업들은 이러한 대융합을 손에 잡히는 상품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사실 상인이라는 단어가 중국의 고대 국가인 상(商)나라 사람이라는 데서 유래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중국에서 상인의 역사는 길다. 중국인들은 길고 긴 상인의 역사를 통해 물건을 파는 독특한 유전자를 개발해왔다. 이 유전자는 이제 인터넷 쇼핑 TV에서 집을 팔고, 향기와 냄새(臭)조차 상품화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우유 캔디맛 립밤, 쌀과자 비비 쿠션, 감자칩 향 매니큐어 등 기발한 아이디어가 먹는 감각, 보는 감각, 듣는 감각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러한 융합의 실험은 금융·정부·교육·의료·에너지·디자인·제조의 영역으로 빠르게 확산 중이다.

강력한 동원체제인 시진핑 정부도 만연한 지역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인프라 연결을 축으로 한 대융합 정책을 도입했다. 새로운 실리콘 밸리로 불리는 장강 삼각주 클러스터도 이 중의 하나다. 여기에는 상하이시의 금융?혁신기술?서비스업, 장수성의 제조업, 저장성의 정보통신 민영경제, 안후이성의 노동력이 융합됐다. 중국 공산당 권력의 중추인 정치국 위원들도 고유한 업무 영역의 칸막이를 치우고 40여 일에 한 번씩은 시대정신을 파악하고 복잡한 국가전략을 공유하기 위해 집체학습을 개최하고 있다. 여기에는 디지털 중국, 빅데이터, 양자역학, 인공지능 등이 토론 주제로 올라오고 있다.



우리 사회도 이합집산이 곧 시대정신이고 여기서 가치를 만들어야 하는 빅블러 시대의 생존법을 찾고 있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 다른 것을 기대하는’ 빗나간 교육을 질타하면서 한국판 미네르바 대학인 ‘태재대학’이 곧 문을 열 예정이다. 위기를 느낀 기업들도 온·오프라인의 경계를 무너뜨린 데 이어 연결과 융합에서 초격차를 찾고 있으며, 기존의 틀을 부수는 실험정신을 유독 강조하고 있다. 관건은 공고한 벽과 카르텔을 허물기 위해 얼마나 빨리 익숙한 것과 결별할 수 있는 지에 달려 있다. 다양한 행위자들이 문제를 중심에 놓고 수평적으로 대화하고 서로 다른 지적 허영심을 한껏 발휘하며 실패를 존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민주주의나 정치개혁의 본령도 승자독식의 다수결 논리가 아니라, 다른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융합 속에서 새로운 방향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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