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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북한, 러시아 그리고 대만

■정영현 생활산업부장

기억 희미해진 '북미 2차회담 실패'

4년만에 핵 위기·전쟁공포 현실로

대만서 미중 맞붙으면 韓도 치명상

北위협 일상 치부말고 적극 대응을





오늘로부터 정확히 4년 전이다. 북미 2차 정상회담 개최지인 베트남 하노이의 오페라하우스 앞을 몇 번이나 오가며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예상 가능한 동선을 가늠했다. 고개를 들어 높은 건물 옥상을 올려다보면 무장한 공안과 눈이 종종 마주쳤다. 매캐한 냄새를 뿜으며 무리를 지어 달리는 오토바이 옆으로 회담 개최를 환영하는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언론이 취재 경쟁을 벌였다. 물론 다들 의구심을 품은 채 두 정상의 행보를 지켜봤다.

열차로 66시간을 달려 하노이에 도착한 김 위원장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자신의 심기를 얼굴에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첫날에는 호쾌하게 웃더니 다음 날에는 정색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기이했다. 회담 도중 일어나 미국으로 돌아가버렸다.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 김 위원장은 평양 귀환길에 분노의 열차 질주를 했다. 전례 없는 방식으로 진행됐던 회담은 전례 없는 방식으로 엎어졌다.

한때 ‘세기의 회담’으로 불렸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그날을 기념하지도, 진지하게 복기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하지만 당시 세상의 모든 시선이 하노이에 쏠렸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날의 협상 실패는 더욱 아쉬워야 하고, 감성적이고 안일한 접근 방식에 대한 반성은 더 철저해야 한다. 특히 전쟁과 핵 위협이 무너진 담장 너머 굶주린 맹견 같은 현실이 돼버린 지금, 회담 실패 전후 상황을 더 심각하게 되짚어보고 대북 정책을 정교화해야 한다.



4년 전만 해도 전쟁과 핵은 일반 대중에 모호하고 추상적인 공포에 불과했다.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1년 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세간의 예측을 철저하게 짓밟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설마 일어날까 했던 전쟁이 발발했고 주요 기반시설이 불길에 휩싸였다. 양국 군인들은 탱크를 몰고 총을 쐈고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했다. 수많은 민간인이 이산가족이 됐고 학살·고문·강간을 당했다. 게다가 전쟁은 이미 양국 간의 사건 수준을 넘어섰다. 다른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병력·무기 등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한국은 지원 문제와 관련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푸틴 대통령의 핵 버튼 사용 가능성도 대두돼 있다. 언제 세계대전으로 확대돼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다.

최근에는 가까운 이웃에서 전쟁과 핵 공포가 스멀스멀 커지고 있다. 대만을 두고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벌일 경우 핵무기가 사용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유수의 전문기관에서 계속 나오고 있다. 대만에서 미국과 중국이 맞붙을 경우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휘말리게 된다. 사소한 충돌만으로도 우리의 산업망과 공급망이 휘청이게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값 상승에 ‘악’ 소리를 내는 것에 비견될 수준이 아니다. 경제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 주한 미군, 주일 미군이 참전할 경우 북한이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도 현재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다. 중국이 미국령 괌을 공격하거나 미국이 주한 미군을 대만에 투입하면 북한이 안보 공백을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한반도가 회생 불능의 불바다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70년간 지속된 휴전 대치 상황과 반복된 북한의 핵 으름장에 우리는 무뎌질 대로 무뎌져 있다.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에도 툭하면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 대지만 우리 일상은 지나치게 평화롭다. 김 위원장 일가의 특이한 행동을 웃음거리로만 치부한다. 그래서는 안 될 일이다. 북한과의 핵 협상, 현재진행형인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가능성 높은 대만 전쟁 모두 모든 감각을 바짝 세워 대응해야 할 치명적 현안이다. 소모적 내부 갈등에 쏟고 있는 에너지를 이제는 우리 경제와 안보, 즉 국민 생존을 위한 경계 태세 강화에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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