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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넘는 美 반도체 보조금 조건에…"손익계산서 바뀌면 투자여부도 바뀌는 법"

[족쇄 된 美 보조금] 고립무원 K반도체

배당금 지급·자사주 매입 제한에

보조금 최대 75%까지 반환해야

법인세 외 사실상 이중과세 부담

정부 "기업입장 반영 협의할것"

원론적 입장 되풀이에 기업 불만

삼성전자 오스틴 사업장 전경. 사진 제공=삼성전자




미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 지원 조건이 공개되면서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등 신청 여부를 놓고 고심하던 우리 기업들은 보조금이 ‘족쇄’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며 난감해 하는 모습이다.

“기업이 협상을 해야 할 사안”이라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는 정부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미국 국익을 앞세운 결정이겠지만 기업의 기술 보안 침해나 재무 상황까지 제약을 받는 것은 기업으로서는 투자의 손익계산서를 다시 따져볼 수밖에 없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도 1일 “조건이 까다로워지면 기업의 투자 계획이 다 바뀔 수 있다”면서 “손익계산서가 바뀌면 투자 여부도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 기업이 계획했던 미국 반도체 투자도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약 20조 원)를 투자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을 구축하고 있다. SK하이닉스 또한 미국에 150억 달러를 들여 첨단 패키징·연구개발(R&D) 센터 등을 건설하기 위해 부지 선정 등 제반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기업들이 보조금 조건 중 걸림돌로 지목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초과이익 공유’다. 1억 5000만 달러(약 2000억 원) 이상의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사전에 현금 흐름 등이 포함된 재정 상세 계획을 제출하고 실제 발생한 수익이 이를 초과한다면 지원된 보조금의 최대 75%까지 미국 정부에 넘겨야 한다. 기업들이 주주가치 제고 및 주가 부양을 위해 쓰는 전통적 경영 수단인 배당금 지급, 자사주 매입 용도로 지원금을 쓰는 것도 엄격히 제한된다.

초과이익과 관련된 구체적인 기준이나 조항은 제시되지 않았다. 현금 흐름과 경영 목표치, 재정지출 등을 미국 정부와 개별적으로 협상하는 과정에서 정부 입김이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익 목표치를 초과해 보조금 일부를 반환하면 법인세 외에 준조세까지 요구받아 사실상 이중과세의 부담도 발생한다.



미국 국가 안보 기관 등이 미국 내에서 생산한 첨단 반도체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는 조항도 잠재적 위험 요소다. 미 정부는 국방부를 비롯해 국가 안보 기관에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접근 허용 범위에 대한 구체적인 제한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제품의 적시 공급 차원을 넘어 첨단 반도체 설계, 더 나아가 핵심 공정 기술이 담긴 반도체 공장 전체까지 접근이 가능해진다면 기술 보안에 대한 문제가 커진다. 반도체 공장은 기업의 핵심 기술이 집약된 곳인 만큼 기업들은 외부 공개를 극히 꺼린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해당 조항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나오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면서도 “보조금을 받기 위해 영업 비밀 유출 부담을 지고 싶은 기업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드레일 조항 역시 우리 기업에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양자택일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큰 부담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서 각각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과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SK하이닉스는 우시 D램 공장, 충칭 후공정 공장, 인텔로부터 인수한 다롄 낸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두 기업이 이곳에서 생산하는 반도체 제품량은 전체의 40~50%에 육박하고 매출 비중 역시 30%에 달한다. 보조금을 받는다면 중국과의 공동 연구나 기술 라이선스가 제한되고 10년간 중국 반도체 공장 설비 증설도 불가능하다. 제품의 40~50%가량을 기술 진보가 없는 제품 위주로만 생산해야 한다.

조건이 공개될수록 기업들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동시에 당장 피부로 느껴지는 정부 대응이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실제 공식적으로는 미국 보조금과 관련한 세부적인 내용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것과 같은 발언을 하는 데다 구체적인 조건들이 발표된 후에도 협상을 기업의 몫으로 돌리는 식의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 지원 조건이 공개된 후 “가드레일 세부 규정 마련 과정에서 우리 기업 입장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미국 관계 당국과 계속 협의할 예정”이라고만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반도체공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미국의 보조금 규제나 가드레일 세부 규정 모두 시스템반도체에 무게가 있다는 점에서 미국 정부에 중국에서 생산하는 한국 반도체는 메모리반도체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시키고 유예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이 사안의 본질이라는 점을 정부가 인식하고 미국을 설득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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