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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용산의 글로벌IB 조급증

강도원 증권부 차장





“원대한 금융 산업 전략을 만들어 달라.”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초 국내 주요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본부장급 임원들을 불러 모아 ‘금융투자산업 발전 방향’에 대한 간담회를 진행했다. 말이 간담회지 참석자들의 말을 빌리면 사실상 숙제를 받는 자리였다. 금융위는 “대통령이 관심을 두는 사안”이라며 증권사의 해외 진출을 독려했다. 좁다면 좁은 국내 시장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증권 거래나 총액인수(언더라이팅) 주선을 통해 수수료로 먹고사는 단편적인 수익 구조를 벗어나 ‘K투자은행(IB)’을 만들라는 주문이었다. 미국 골드만삭스나 JP모건 등 해외 유수의 IB처럼 조 원 단위의 글로벌 대형 인수합병(M&A) 거래를 주관하고 자기자본으로 지분 투자도 하라는 것이었다. 금융위는 다양한 최첨단 금융 기법을 활용해 경쟁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야 한다는 얘기도 했다. 은행 같은 간접금융이 아니라 자본시장을 중심으로 한 직접금융 경쟁력을 갖추고 토큰증권(ST)이나 기술 기반 금융 사업까지 영토를 넓히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부가 강조한 사항들은 국내 금융투자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진작에 필요한 일이었다. 정부의 주문 가운데 틀린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꼭 지금이어야 할까. 금융투자 업계는 지난해 말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이 마비된 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후유증을 아직도 겪고 있다. 증권사끼리 돈을 모아 어려운 증권사를 도우며 겨우 ‘깔딱고개’를 넘어섰다. 미국의 공격적 기준금리 인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원·달러 환율은 순식간에 1달러당 1300원대로 다시 올라섰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말처럼 안개가 자욱한 상황이다. 글로벌 IB로의 변신은 당연한 방향이지만 금투 업계는 지금 제 앞가림하기도 벅찬 게 현실이다.

정부는 이번 간담회에서 6월까지는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고 증권사들을 다그쳤다. 정부의 말대로라면 4개월 만에 한국판 골드만삭스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해야 될 것 같다. 금투 업계는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 내로라하는 규모의 딜을 최소한 한두 건은 만들어내야 할 처지가 됐다. 금투 업계도 세계 무대에서 글로벌 IB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 하지만 규모와 수익성을 다 잡을 수 있는 딜을 따오기에는 체급이 작고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국내 1위 증권사라고 해도 자본금은 11조 원에 불과하다. 골드만삭스 등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정부가 이렇게 서두르는 것은 국내 금투 업계의 세계시장 진출이라는 치적을 위해서일 것이다. 치적보다 중요한 것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국내 금융시장부터 안정시키는 일이다. 느닷없이 글로벌 IB가 되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글로벌 IB가 되지 못하도록 길을 막고 있는 덩어리 규제부터 없애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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