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귀환이다. 고진영(28)이 오랜 부상과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와 정확히 1년 만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정상에 올랐다. 한국 선수의 18개 대회 무승 행진을 끊어낸 주인공도 ‘에이스’ 고진영이었다.
고진영은 5일 싱가포르 센토사 골프클럽 탄종 코스(파72)에서 끝난 LPGA 투어 HSBC 위민스 월드챔피언십(총상금 180만 달러)에서 최종 합계 17언더파 271타로 2타 차 우승을 달성했다. 지난해 이 대회 우승 이후 1년 만에 들어 올린 통산 14번째 우승컵이기에 더욱 뜻깊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LPGA 투어는 ‘고진영 천하’였다. 지난해 이 대회까지 출전한 10개 대회에서 무려 여섯 번이나 우승해 세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손목 부상과 함께 부진의 터널에 들어간 뒤 좀처럼 살아나지 못했다. 11월에는 9개월 만에 세계 1위에서 내려와야 했다. 이날 현재 세계 랭킹은 5위다.
고진영의 부활은 직전 대회인 혼다 LPGA 타일랜드부터 시작됐다. 겨우내 재활과 체력 훈련, 스윙 회복에 공을 들인 고진영은 혼다 타일랜드에서 나흘 내리 언더파를 치며 공동 6위에 올라 건재를 알렸다. 이번 대회에서는 첫날 공동 36위로 시작했지만 2·3라운드에서 공동 8위·단독 1위로 순위를 끌어올린 끝에 우승 상금 27만 달러(약 3억 5000만 원)를 챙겼다.
2타 차 단독 선두로 최종 라운드에 나선 고진영은 1번 홀(파4)부터 버디를 낚아 기분 좋게 출발했다. 5번(파5)과 8번 홀(파5)에서 버디를 낚은 그는 11번 홀(파4)에서 첫 보기를 범해 13번 홀(파5)까지 5타를 줄인 대니엘 강(미국)에 1타 차 추격을 허용하기도 했다.
승부처는 13번 홀이었다. 세 번째 샷이 그린에 안착했으나 핀과 약 6m 거리에 떨어졌다. 까다로운 버디 퍼트였음에도 고진영의 퍼트는 자로 잰 듯 정확히 홀로 굴러 들어갔다. 대니엘 강을 다시 2타 차로 따돌린 고진영은 우승을 자신한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고진영보다 앞서 경기를 펼친 대니엘 강은 16번 홀(파5)에서 이날 첫 보기를 범해 추격의 의지가 꺾였다.
마지막 3개 홀을 남기고 낙뢰 예보와 갑작스런 폭우에 경기가 약 1시간 중단되기도 했지만 고진영은 경기 재개 후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남은 홀을 파로 마무리, 3언더파 69타를 적어내며 여유롭게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우승 확정 후 눈물을 쏟은 고진영은 “굉장히 많은 생각이 들었다”며 “프로 데뷔하고 나서 첫 우승했을 때 났던 눈물과 느낌이 비슷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누구보다 연습을 열심히 했고 그 누구보다 흘린 땀과 눈물이 있기 때문에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고진영이 우승하면서 지난해 6월 전인지(29)가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이후 지루하게 이어져온 한국 선수의 우승 가뭄도 19번째 대회에서 끝났다.
이날 마지막 18번 홀(파4) 버디를 포함해 3언더파를 친 넬리 코다(미국)가 2타 차 단독 2위(15언더파), 대니엘 강은 공동 3위(14언더파)로 대회를 마쳤다.
김효주(28)는 이날 버디 4개와 보기 1개로 3언더파를 쳐 합계 11언더파 공동 8위를 기록, 혼다 타일랜드 공동 10위에 이어 2개 대회 연속 톱 10에 입상했다. 지은희(37)와 김아림(28)도 각각 공동 11위(9언더파)와 공동 14위(8언더파)로 좋은 성적을 냈다. 나란히 4타씩 줄인 최혜진(24)과 안나린(27)은 공동 20위(7언더파)에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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