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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당원 만능주의에 기댄 민주당의 위기

◆ 손병권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당내 다양한 목소리 존중돼야

민주적인 정당 운영 가능해져

무리한 팬덤 요구 대처하려는

엘리트들의 이성적 설득 절실

손병권




민주적 정당의 의사결정 과정이 당원의 뜻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는 민주적 정당 운영의 대원칙에 관한 진술일 뿐 당원의 의사가 어떻게 표출되고 이를 얼마나 수용할 것인지에 대해 합의된 의견은 없다. 나라마다, 그리고 정당마다 당원 의사의 표출 방식이나 그 수용 정도가 모두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당원 중심의 정당이 제대로 구현될 수 없었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당원을 중심으로 한 상향식 정당의 족보 자체가 없었다. 냉전과 분단의 상황에서 노동운동을 불온하게 보던 권위주의 시절, 산업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처럼 노동자를 기반으로 한 당원 중심의 상향식 대중정당은 처음부터 기대하기 어려웠다.

민주화 이후에는 이른바 ‘3김’이 보스로 군림한 지역주의 정당이 등장해 당원 중심의 정당이 태동할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민주화와 함께 미디어 중심의 선거운동이 전개되자 당원의 지지에만 의존하는 후보보다는 일반 국민에게도 호소력을 지닌 후보를 선발하는 대선이 반복됐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이 국민참여형 경선을 도입한 후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는 당원, 대의원, 일반 국민, 여론조사 참가자들이 함께 선발해 왔다. 이처럼 민주화 이후 당원은 중요한 정치적 행위자이기는 했으나 그 위상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후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독특한 성격을 지닌 일군의 열성 당원들이 출현했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이들은 당의 정책 노선에 공감하는 전통적 의미의 당원이라기보다는 당대 공연(公演)형 유력 정치인의 언변이나 제스처·스타일 등에 몰입된 당원인 경우가 많았다.

정치가 점점 공연처럼 ‘놀이’화 되는 모습을 띠게 되었고 유권자들 역시 정당의 연출과 정치인의 개인적 매력에 이끌리는 경향이 생겨났기 때문에 이런 유형의 당원들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다만 공연형 정치인을 추종하는 당원은 맹목적인 팬덤 성향을 보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이들이 집단행동으로 나설 때 그 과도한 영향력이 우려되는 점은 있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에서 ‘수박 색출’에 몰두하는 열성 당원이 이러한 성향의 당원들로 보이는데 이들의 행태가 과도한 측면이 있어 민주당의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최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국회 체포동의안 부결 이후 ‘개딸(개혁의 딸)’로 대표되는 열성 당원들이 집단행동에 나서 공당(公黨)의 정상적 운영과 비명계 의원들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는 당원의 통상의 의사 표출 수준을 넘는다.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의원들을 색출하려는 작업이 이들에 의해 진행되자 비명계 의원들의 의정활동이 크게 위축됐고 당내 친명 대 비명 세력 간의 갈등이 점점 치열해졌다.

국민의 일반적 정서보다 훨씬 더 이 대표에게 팬덤적 지지를 보내는 열성 당원의 집단행동은 이 대표가 직접 나서 자제해줄 것을 호소할 정도로 민주당의 분열과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물론 정당 민주주의를 표방한 국가에서 당원이나 정당 지지자들의 영향력이 일정 기간 서서히 커져왔던 역사적 추세와 그 결과 나타난 보스 체제 타파 등의 긍정적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와 맞물려 팬덤 성향의 당원들이 특정 인물의 열성 지지자가 돼 정당의 민주적 운영을 방해할 정도로 일방적 영향력을 행사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당의 민주적 운영은 당내의 다양한 목소리가 존중될 때 가능하고 정당의 선거 승리는 그 다양한 목소리를 창구로 해서 바깥의 민심을 입체적으로 경청할 때만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성 당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당내 유일한 목소리로 강요하는 것은 다양성을 토대로 가능한 정당의 내적 활력과 외적 경쟁력 유지에 심각한 장애 요소가 된다. 지금 민주당의 경우라면 당원 만능주의에 기대기보다는 당의 발전적 미래를 위해 팬덤의 무리한 요구에 대처하는 정당 엘리트들의 다양성 수호 의지와 이성적 설득 노력이 더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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