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냥처럼 주는 돈은 받지 않겠다. 반드시 사죄를 먼저 한 다음에 다른 모든 일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 (일본 강제 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정부의 굴욕적 강제 동원 해법 철회하라. 일본 정부는 강제 동원 사죄하고 가해 기업은 배상하라.”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와 이들을 지원해온 시민단체들이 6일 제3자 변제 방식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방안을 인정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정부가 발표한 해법에는 일본 피고기업의 배상 기금 참여와 사과가 포함되지 않아서다. 시민들 역시 “피해자 나라가 사과를 받기는 커녕 오히려 배상금을 내게 생겼다”며 분노하고 있다.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는 이날 오전 광주 서구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사무실에서 강제동원 문제 해결방안에 대한 정부 발표를 온라인 생중계로 지켜본 뒤 “동냥처럼 주는 돈은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인들이라고 해서 너무 얕보지 말라”며 “반드시 사죄를 먼저 한 다음에 다른 모든 일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해법에 전범기업의 사과가 담기지 않은 점을 지적한 것이다.
시민단체들도 이번 해법이 가해자의 책임을 면책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반발했다. 정의기억연대, 민족문제연구소, 민주노총 등 611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같은 날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피해자를 향한 사죄와 배상이 없다면 그 어떤 해법도 인정할 수 없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항의행동에 참여한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피해자들은 사죄도, 법적 배상도 없는 협상에 반대하고 있다”며 “윤 정부는 국민들의 확정된 법적 권리를 짓밟고, 일제 전범 기업의 법적 책임을 면제해주는 친일 매국협상을 강행 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지영 정의기억연대 팀장도 “피해자가 가해자에 무릎 꿇는 건 상상 못했다”며 “(이번 해법 발표는) 대일 굴종 외교”라고 비판했다.
김재하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는 “104년 전 이완용과 을사오적이 일본총독과 했던 경술국치 선언과 다를 바 없다”며 “국내기업이 수혜를 입어서 돈을 내야 한다는 것도 어처구니없다. 국민으로서 수치스럽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회견 참석자들은 정부의 발표 시간에 맞춰 외교부 청사를 향해 부부젤라를 불며 거세게 반발했다.
진보당도 외교부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제3자 변제안이 “사상 최악의 굴욕외교”라고 지적했다. 윤희숙 진보당 대표는 “일제 강제동원 문제해결에 물러설 수 없는 원칙은 범죄인정·사죄 배상·책임자처벌”이라며 “이 중 어느 것 하나 포함되어있지 않은 제3자 변제안은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오후에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오후 7시 30분부터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정부안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열 예정이다.
앞서 이날 박진 외교부 장관은 외교부 청사에서 ‘제3자 변제’ 방식을 골자로 한 강제동원 피해배상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확정 판결을 받은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피고인 일본 기업 대신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서 배상금을 받게 된다.
다만, 여기에 필요한 재원 40억 원은 민간의 자발적 기여 등을 통해 마련할 예정이다. 한·일 양국 기업에서 자발적으로 기여하는 방식이다. 한국 측은 포스코를 비롯해 한국도로공사, KT&G, 한국전력, KT 등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자금 수혜를 입은 국내 기업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강제동원 당사자인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이 배상금 재원 조성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일본 정부가 끝까지 거부 의사를 밝힌데 따른 것이다. 그간 일본 측은 두 기업이 배상금 재원 소송에 관여할 경우, ‘한국 대법원 판결을 인정하는 셈’이라는 거부 입장을 고수해왔다.
대법원에서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는 15명이다. 이 가운데 생존 피해자는 양 할머니를 포함해 김성주 할머니, 이춘식 할아버지 등 3명 뿐이다.
이들에게 지급해야 할 배상금은 지연이자를 포함해 약 40억원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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